검찰이 19일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차명계좌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에게 전달됐다던 3억원의 꼬리를 찾아낸 것이 사실이라면 노 전 대통령 측이 왜 권 여사를 내세워 `거짓진술'을 했는지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정 전 비서관이 체포된 지난 7일 노 전 대통령이 홈페이지를 통해 권 여사를 앞세웠을 때 검찰 안팎에선 이 글의 목적이 자신의 최측근인 정 전 비서관의 구속을 일단 막고 그의 혐의를 무력화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권 여사가 방패막이가 되는 논리가 `비상식적'이고 `비도의적'이긴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모르는 돈이 돼 `법적'으로는 뇌물죄에서 빠져나갈 수 있고 정 전 비서관은 단순 전달자로 혐의를 벗을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떳떳하지 못한 돈을 받긴 했지만 사용처의 흔적이 남지 않는 현금이므로 개인적인 채무를 갚는 데 썼다고 일관되게 진술하면 권 여사도 처벌을 면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시각이었다.

따라서 검찰이 `남편과 아버지로서 몰랐을 리 없다'는 상식을 내세우면서 사용처 규명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고 강조했을 때도 법적으로 다툴 여지가 많다는 전망이 많았었다.

그러나 이런 방어 논리의 구조는 한 축이 무너지면 전체가 붕괴하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박연차-정상문-권양숙'으로 이어지는 현금의 흐름을 추적하며 좁혀오는 검찰의 포위망에서 노 전 대통령 측이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권 여사와 노 전 대통령, 박 회장과 노 전 대통령의 연결점을 완벽히 차단해야 하고 이 돈을 설명하는 정 전 비서관과 권 여사의 진술이 한 치도 어긋나면 안 되기 때문이다.

또 이 현금을 권 여사가 빚을 갚는 데 썼다는 게 노 전 대통령 측의 해명인 만큼 사용처의 흔적을 남기지도 말아야 한다.

이 같은 조건이 하나라도 어긋난다면 노 전 대통령은 더 큰 역풍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직 이 3억원이 문제가 된 박 회장의 돈으로 단정할 수 없지만 검찰이 확보한 정황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권 여사는 사법기관을 상대로 거짓말을 했고, 노 전 대통령도 조직적으로 수사를 방해하고 증거를 은폐하려 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권 여사는 정 전 비서관의 지난 9일 구속 전 피의자 신문(영장실질심사) 직전 법원에 "정 전 비서관을 통해 박 회장에게 100만 달러와 3억원을, 정대근 전 농협회장에게서 3만 달러를 받았다"는 해명서를 냈고 이는 바로 영장 기각으로 이어졌다.

무엇보다 검찰에 맞서 권 여사를 앞세워 펴왔던 노 전 대통령의 방어논리도 허점을 노출하게 돼 더욱 궁지에 몰릴 수밖에 없다.

이런 위험을 모를 리 없는 노 전 대통령이 권 여사를 동원해 "3억원도 내가 썼다"는 허위 진술을 했겠느냐는 의구심이 일각에서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간 정 전 비서관과 긴밀히 연락을 취했을 노 전 대통령 측이 검찰의 이날 발표 전까지 차명계좌에 3억원을 보관했던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는 것도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박 회장에게 돈 가방에 든 현금으로 받았으면서 즉시 차명계좌에 넣은 정 전 비서관의 행동도 의문이 남기는 마찬가지.
노 전 대통령 측도 19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검찰 발표를 이해할 수 없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권 여사가 근거 없이 `내가 받았다'고 말하진 않았을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따라서 검찰은 정 전 비서관의 차명계좌에 2년 반 동안 보관된 3억원이 권 여사가 썼다는 돈과 같은 돈인지, 그렇지 않다면 왜 권 여사가 자신의 몫이었다고 주장했는지를 우선 밝혀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됐다.

(서울연합뉴스) 강훈상 기자 hska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