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대통령 패밀리까지는 건드리지 않도록 하자. 우리 쪽 패밀리에는 박연차도 포함시켜 달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가 작년 9월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을 만나 청와대 민정수석이나 검찰 쪽에 전달해달라며 했다는 말로 알려져 있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은 노 전 대통령측에게 `패밀리'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믿었던 패밀리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을 비롯한 친노(親盧) 진영은 줄줄이 검찰 수사를 받으며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실제 박 회장과 노 전 대통령의 관계는 단순히 알려진 것처럼 후원자 이상으로 보이는 부분이 적지 않다.

비단 노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친인척, 측근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박 회장은 1988년 노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 출마 때 김해 일대 땅을, 2002년에는 대선자금을 위해 거제 일대 땅을 매입해줬다.

검찰에서 무혐의 결론을 냈지만 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 사저를 지을 때 건축비 15억원을 연이율 7%로 빌려줬다지만 만기가 지났음에도 갚았다는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

검찰 주장대로 박 회장측이 100만달러를 전달한 장소가 청와대였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패밀리가 아니고서는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다.

노 전 대통령의 30대 조카사위에게 500만달러를 줬다는 것 역시 투자 목적이라고 하지만 석연치 않다.

박 회장은 친노 성향 의원들에게도 고액 후원금을 기부한데 이어 이번 검찰 수사에서 보듯 몇만달러 정도는 손쉽게 뿌릴 정도로 정성을 표시했다.

이런 인연 탓인지 박 회장은 재임 중 노 전 대통령과 여러 차례 골프를 함께 할 정도로 가까이 지냈고, 2007년 남북정상회담 수행 기업인에 포함되기도 했다.

박 회장도 참여정부 시절 승승장구했다는 것이 중평이다.

노 전 대통령의 또 다른 후원자인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도 노 전 대통령과의 관계가 각별하다.

강 회장은 봉하마을 개발사업을 목적으로 70억원을 투자해 ㈜봉화를 설립했지만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의 왼팔로 불리는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은 강 회장 회사에 사외이사로 급여를 받았다.

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 퇴임 후에도 매주 1회 이상 봉하마을을 찾았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이번 사건을 `비도덕적 가족주의(Amoral Familism)'가 빚어낸 잘못된 관행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패밀리의 번성을 위해 도덕적 의식없이 막하는 문화가 아직도 우리 사회에 남아있다"고 말했다.

그는 "연방제인 미국과 달리 한국은 대통령의 권한이 막강해 제왕적 대통령제 성격이 강하고 행정부를 견제할 국회와 시민사회단체가 참여정부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한 부분도 패밀리즘의 번성 요인이 됐다"고 지적했다.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인 최 진 고려대 연구교수는 "노 전 대통령의 성장과정을 보면 공적 관계보다는 사적 관계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사적 인연을 강조하는 삶이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그대로 나타난 것"이라고 평가했다.

오랫동안 원외의 비주류 정치인 생활을 하면서 대기업 후원자보다는 지방 중견기업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이것이 일종의 가족의식으로 발전해 집권 이후까지 이어졌다는 분석인 셈이다.

최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은 선동가형 리더십을 갖고 있는데, 이 경우 진보든, 보수든, 도덕적이든, 부도덕하든 극과 극을 넘나드는 특징이 있다"며 "이번 사례도 부도덕한 경우가 극단적으로 드러난 대표적 사례"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류지복 기자 jbry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