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한나라당이 추진 중인 금산분리 완화는 재벌이 금융업에서 쉽게 돈을 벌도록 허용하는 취지만 아니라면 필요한 정책"이라며 "영국에서도 산업과 금융 자본의 거리가 너무 멀어 제조업 발전에 장애를 겪었다"고 밝혔다.

장 교수는 6일 정두언 의원(한나라당 국민소통위원장)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한 '이래도 신자유주의인가' 강연회를 마친 뒤 기자와 만나 "금산 분리가 절대적 가치는 아니다"며 이같이 밝혔다. 장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정부의 규제 완화와 금융시장 자유화 정책을 강력 비판했지만 금산 분리 완화에 대해서 만큼은 '조건부 긍정' 입장을 표명했다.

장 교수는 또 "기후변화 녹색성장 패러다임은 이미 관련 기술을 갖고 있는 선진국이 판을 벌이고 있는 영역이지만 생존을 위해서는 우리도 따라가야 한다"고 했다.

이날 강연은 한나라당 의원들이 '반(反) 신자유주의 전도사'로 통하는 장 교수를 불러 '쓴소리'를 자청한 자리다. 장 교수는 금융 선진화 정책에 대해 "금융이 실물 경제와 떨어져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며 "우리가 지금까지 잘해 온 제조업의 역량을 버리고 왜 자꾸 금융업으로 가려 하느냐"고 비판했다.

세계적 경제위기에 관해서는 "지표들이 회복되는 듯하니까 최악은 면했다고 하는데 아직 갈 길이 멀다"며 "3막짜리 연극에서 1막인 금융 경색이 나온 뒤 이제 2막이 시작된 것"이라고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다.

한나라당 의원들도 신자유주의 정책을 재검토할 필요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했다. 임태희 정책위 의장은 축사에서 "우리나라는 1945년 광복 이후 미국 표준으로 살아 왔다"며 "앞으로 이것을 고치고 비판하면서 대한민국에 맞는 새로운 표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두언 의원도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는 한나라당뿐만 아니라 김대중 정부 때부터 한국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이념"이라며 "나무를 45도만 휘게 하려 해도 90도를 비트는 만큼의 힘을 가해야 하는 것처럼 기존 한나라당과는 생각이 다른 장 교수를 불러 경청하는 시간을 가진 것은 그만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