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거리 늘렸지만 ICBM 기술확보는 '아직'

북한이 5일 장거리 로켓 발사로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기술 능력을 입증하려 했지만 사실상 실패했다.

이상희 국방부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1~3단계 탄체가 모두 해상에 추락했고, 어떤 물체도 궤도에 진입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북한 로켓의 2, 3단 추진체는 일본 동쪽에서 2천100㎞ 이상 떨어진 지점, 발사장으로부터는 3천100㎞ 이상 거리에 낙하한 것으로 추정된다.

ICBM은 5천500㎞ 이상을 비행해야 하지만 로켓 다단 추진체의 착탄지점 거리를 감안하면 ICBM 기술 보유를 입증하는 데는 미흡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게다가 북한이 이날 발사한 로켓 탑재체의 무게가 30㎏ 안팎이었다는 점에서 탄두 무게가 500~1천㎏에 달하는 ICBM으로 전용할 경우 그 사거리는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측면도 북한의 ICBM 기술 미확보에 대한 근거가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북한이 이날 발사한 로켓의 수준이 현재 실전배치 중인 사거리 3천㎞ 이상의 중장거리 미사일(IRBM)과 유사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중거리 미사일(MRBM)은 사거리가 800~2천399㎞, IRBM은 2천400~5천499㎞다.

특히 2, 3단계 추진체가 분리되지 않은 채 `한몸'으로 추락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탄도미사일과 인공위성 발사의 핵심기술 중 하나인 다단로켓 분리기술에 결함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는 2단계 추진체를 3단계에서 분리하는데 성공했던 1998년 대포동 1호 발사 당시보다 기술이 후퇴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북한은 1998년 8월31일 무수단리에서 사거리 1천500~2천500㎞로 추정되는 3단식 로켓인 대포동 1호를 발사해 2단계 추진체까지 분리했으나 3단계는 궤도진입에 실패해 대기 중에서 타버린 것으로 추정된 바 있다.

북한은 이때에도 탄도미사일이나 인공위성 기술 중 하나인 다단로켓 기술은 상당수준임을 보여줬다.

이후 북한은 위성을 궤도에 안착시키는 3단계 로켓의 고체연료 기술 확보에 나섰고 KN-02 미사일 개발로 소형로켓용 고체연료 기술을 확보했다.

그러나 이는 소형로켓용 고체연료일 뿐 대형로켓용은 아직 확보하지 못했을 것으로 상당수의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만일 북한이 이번에 인공위성을 궤도에 올리는 데 성공했다고 가정하더라도 ICBM의 경우 탄두가 대기권 안으로 재진입해야 하며 그때 발생하는 초고열을 견딜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한데 북한이 이를 확보했을지 여부도 불투명하다.

한 군사전문가는 또 "ICBM이 실제로 얼마나 날아갈지는 로켓의 속도와 단계별 로켓의 연소 종료시점 등 여러 변수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해 극복해야할 변수가 적지않음을 지적했다.

하지만 비록 인공위성 발사에 실패하고 ICBM 기술을 입증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북한이 이날 발사한 로켓의 2단계 추진체가 발사장으로부터 3천100㎞ 거리의 해상에 떨어졌다는 점은 북한의 미사일 기술이 진일보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1998년 북한이 발사한 대포동 1호의 2단계 추진체는 발사지점으로부터 1천646㎞ 떨어진 지점에 낙하했다.

11년만에 두 배 가까이 더 날아간 셈이다.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북한이 인공위성을 발사한다 하더라도 사실상 미사일 기술과 동일하다는 점에서 제재의 목소리를 높인 것도 북한이 우주개발을 명목으로 이처럼 미사일 기술을 진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북한의 미사일 기술 향상이 갖는 국제정치 및 군사적 의미는 작지 않다.

핵폐기 문제로 미국과 기싸움을 벌이고 있는 북한 입장에서는 또 하나의 유효한 협상카드를 쥐게 되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입지를 점할 것으로 보인다.

또 사거리 배증으로 국제 안보지형에 일정부분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정부 당국자가 발사 실패에도 북한의 ICBM 능력에 대해 "평가에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며 판단을 유보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읽힌다.

무수단리를 기점으로 미국 본토 서부까지는 1만1천㎞, 하와이 7천600㎞, 알래스카 7천400㎞이며, 미국의 태평양 전진기지인 앤더슨 공군기지가 있는 괌까지는 3천600㎞ 거리다.

(서울연합뉴스) 이상헌 기자 honeyb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