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 수사가 파죽지세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고액 달러 화폐가 금품 제공 수단으로 '애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7일 검찰에 따르면 박 회장과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장은 구속된 민주당 이광재 의원에게 수차례에 걸쳐 각각 12만달러와 3만달러를 건넸는데, 일부는 해외에서 전달했지만 상당액은 국내에서 넘겨준 것으로 드러났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이날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는 한나라당 박진 의원도 박 회장으로부터 국내에서 수천만원을 달러화로 받은 의혹이 제기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은밀한 거래'에 달러화가 쓰이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원화에 비해 부피가 작고 혹시 모를 수사기관의 추적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검찰 안팎의 해석이다.

정 전 회장은 2004∼2006년 이 의원에게 3차례에 거쳐 1만달러씩을 건네면서 한번에 100달러 짜리 100장을 봉투에 넣어 건넨 것으로 검찰 조사에서 밝혀졌다.

원화라면 100만원밖에 담지 못할 봉투에 1천만원이 넘는 돈을 가뿐히 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인들로서도 이런저런 명목으로 해외에 나갈 일이 많고 환전 과정을 거치면 국내에서 쓰는 데 전혀 지장이 없기 때문에 `검은 달러'를 선호하게 된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검찰 관계자는 "100달러 짜리는 10만원권 수표와 비슷한데 가치가 자꾸 높아질 뿐 아니라 1천원권보다 크기도 작아 전달하기도 쉬웠던 것 같다"고 말했다.

수사당국의 추적을 피할 수 있다는 점도 큰 매력이다.

수표는 고유번호가 붙어 있고 사용자의 이서가 필요해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더라도 거듭된 추적을 통해 흐름이 드러나는 일이 잦다.

이 같은 현실 때문에 5만원권 고액권이 곧 발행되는 데 이어 향후 10만원권이 나오면 검찰의 부정부패 수사가 난관에 봉착하게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한 특수통 검사는 "검은 돈을 받은 사람들이 의외로 세탁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고 수표를 쓰다 덜미가 잡히는 일이 적지 않은데 앞으로 10만원권이 나오면 수사가 크게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차대운 기자 setuz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