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지난 2월 임시국회에서 주요 민생 · 경제 법안들을 대부분 처리했다고 주장하고 있는것과는 달리 여전히 국회에서 처리가 지연되고 있는 민생 · 경제 법안들이 수백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법안은 여야간 큰 쟁점이 없는데도 지난해 말부터 계속된 여야의 '입법 전쟁' 때문에 통과가 늦어지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법안 내용이 서민을 위한 일자리 창출과 기업 경쟁력 강화 등 국민 생활과 밀접한 게 대부분이어서 4월 임시국회에서 시급히 통과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23일 국회에 따르면 환경노동위는 여야간 대치로 2월 국회에서 한건의 법안도 처리하지 못했다. 법안심사 소위를 구성하지 못한 탓에 18대 국회 들어 통과시킨 법안이 20건에 불과하다. 나머지 150여건은 논의조차 진행하지 못했다.

특히 경기 악화로 갈수록 일자리 문제가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70여개의 일자리 관련 법안이 제출됐지만 처리 실적은 제로 상태다. 장애인 일자리를 확대하기 위한 장애인 고용 촉진 및 직업 재활법,사회적 기업에 전문인력과 재원을 지원하는 사회적 기업 육성법,청년층 고용 지원 서비스와 공공기관의 채용 의무 등을 강화한 청년실업 해소 특별법 개정안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사회문제로 떠오른 석면 피해를 막기 위해 각 당에서 피해 보상 법안과 각종 지원법안을 제출했지만 상정조차 하지 못했다.

직종과 지역별로 최저 임금을 달리해 고용 유지에 기여하자는 최저임금법 개정안,근무 조건과 직접 관련되지 않은 사항을 교원노동조합의 단체교섭 대상에서 제외하는 교원노동조합법 개정안 등도 4월 환노위에서 반드시 처리해야 할 법안으로 꼽힌다.

국토해양위에도 290여건의 법안이 올라 있다. 고령자 주거안정법,공항소음 방지법 등 주거 복지와 직결된 민생 법안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옮겨가는 기업에 대해 각종 규제를 완화해 주는 기업도시개발 특별법은 지난해 국무회의를 통과했지만 상임위 차원의 논의는 감감무소식이다. 국토해양부는 소관법률 일원화를 위해 측량 · 수로 조사 및 지적에 관한 법률을 지난 10월 제출했지만 국회에서 전혀 진전이 이뤄지지 않아 정책 집행에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화물운송 대란을 막기 위해 당정이 대책을 수립한 화물운송제도 개선 법안도 빨리 처리돼야 할 법안이다.

보건복지가족위에 상정돼 있는 370여개 법안 중에도 하루속히 통과시켜야 할 법안이 적지 않다. 늘어나는 아동 성폭력 범죄에 대응해 아동의 법적 보호를 명시한 청소년 성보호법 개정안,발병자가 급속히 늘고 있는 결핵의 예방체계를 강화하는 결핵예방법 등이 해당된다.

이처럼 민생 · 경제 법안이 산적해 있지만 4월 국회에서도 추가경정 예산안 편성과 방송법 등 굵직굵직한 쟁점에 밀려 이들 법안 처리가 또 다시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환노위에서 이달 중 법안심사 소위 구성과 관련 협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단독으로라도 상임위를 열겠다는 방침이다.

김유미/김일규/이기주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