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모방지 빗 샀을 정도로 마음고생 심해

'원칙이냐, 타협이냐'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4.29 전주 덕진 재선거 출마를 선언한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의 공천 여부를 놓고 중대한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15대 국회 때 나란히 원내에 진출해 국민의 정부로의 정권교체, 참여정부로의 정권 재창출을 위해 한배를 탔던 정 전 장관이 정 대표의 표현대로 자신을 `백척간두' 결단의 순간으로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정 전 장관의 출마선언 이후 식사를 제대로 못 하고 불면증도 생겨 몸무게까지 줄었다고 한다. 최근 탈모방지 빗을 샀을 정도로 마음고생이 심하다.

정 대표는 이 문제가 불거지고 나서 "모든 책임은 내가 져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대표직 사퇴의 배수진까지 쳤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전략공천권을 쥔 정 대표가 평소 강조한 원칙론만 생각하면 덕진 공천은 줄 수 없다. 정 대표 입장에서 정 전 장관의 출마 강행은 항명이나 마찬가지다.

수도권 득표력을 떨어뜨린다는 비호남권 정치인의 호소를 무시 못하고, `반(反) MB전선'을 형성해 한나라당과 대결하려던 선거구도도 퇴색될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이미 정 대표는 덕진 공천이 어렵다는 메시지를 수차례 던졌다.

한 당직자는 22일 "정 대표가 덕진 출마를 용인하면 대선후보는 당명을 거역해도 좋다는 나쁜 전례를 만드는 것"이라며 "대표가 원칙을 저버리면 어떻게 지도력을 발휘하겠느냐"고 말했다.

공천을 주지 않는 것도 간단치 않다. 자칫 당의 대선후보를 매장시키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지난 20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자 중 55.5%가 전주 덕진 공천에 찬성하고 반대론은 28.4%에 불과했다. 정 전 장관과 같은 전북 기반인 정 대표 입장에서 지역 민심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행여 정 전 장관이 공천 배제 뒤 무소속 출마를 강행해 당선되고 필승을 목표로 하는 인천 부평을 재선거마저 패배하면 정 대표 본인은 물론 당도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질 것이라는 현실론도 무시할 수 없다.

부평을 출마를 유도하는 타협론도 거론되나 정 전 장관이 결단하거나 원로그룹에서 제안하면 검토할 수 있는 카드이지, 정 대표가 먼저 내놓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주변의 관측이다.

한 당직자는 "정 대표도, 정 전 장관도 모두 외통수에 걸렸기 때문에 상황을 회피할 수 없다"며 "이제는 정말 진정성을 갖고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류지복 기자 jbry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