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공장 입주가 시작된 개성공단이 출범 5년을 맞아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다. 북측이 지난 9일에 이어 13일부터 15일까지 개성공단을 오가는 입주 기업 임직원과 원자재의 통행 · 통관을 차단하면서 정상적인 공장 가동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북측의 이번 조치는 통행제한이 아닌 통행차단인 만큼 개성공단은 '폐쇄'의 수순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비관론마저 제기될 정도다.

◆차단 6일 넘으면 전체 가동 중단

15일 개성공단기업협의회에 따르면 지난 14일 개성공단에서 열린 입주기업법인장 회의를 통해 72개 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5일을 기준으로 이후 6일 이상 인력 · 물자 통행이 막힐 경우 94%(68개)가 가동 중단이 불가피하다고 응답했다. 15일 현재 10개 기업이 정상 가동을 못하고 있으며 △1일 이후 31개 △2일 36개 △3일 52개 △4일 56개 △5일 67개 △ 6일 68개 등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가동 중단 업체가 늘어나는 것으로 파악됐다. 개성공단에 입주한 한 섬유업체 대표는 "통행이 계속 차단돼 원단이 북으로 올라가지 못하면 당장 월요일(16일)부터 재단 라인은 중단될 수밖에 없고, 3~4일 후면 봉재 등 다른 라인들도 단계적으로 가동을 멈추게 된다"고 전했다.

이미 입주기업마다 생산 차질,납기 지연 등이 잇따라 발생하는 실정이다. 속옷 등 섬유제품을 생산하는 A사는 13일 4만세트 분량의 중국 수출 선적이 예정돼 있었으나 통관이 중단되면서 이를 지키지 못했다. 이 회사 대표는 "느닷없이 출하가 막혀 중국 바이어의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개성공단에서 귀환한 한 입주업체 직원 김향희씨는 "재고가 이틀분밖에 남지 않아 앞으로 생산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것 같다"고 우려했다. 의류업체인 C사 관계자는 "최근 대기업 원청업체로부터 봄철 의류 수주계약 건이 취소됐다"고 밝혔다.



◆"이혼서류 도장 찍고 올라가라"

공단 현지의 관리 시스템 붕괴 움직임도 심각한 문제다. 봉제업체 E사 관계자는 "현지에 당직자 1명만 남아 있어 봉제,재단기술지도나 품질,공정관리 등 체계적인 작업 지시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며 "현지 기업 가운데 20% 정도는 관리공백 상황에 처해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광용 경원전자 관리팀장은 "현지에 주재원이 2명 남아 있는데 숙소,식당의 난방용 가스가 40%밖에 남지 않아 나흘 정도면 동이 난다"고 말했다.

국내 근로자들이 남쪽으로 귀환하지 못하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개성공단 근무를 기피하는 현상도 두드러지고 있다. 섬유업체 F사 관계자는 "부인이 개성에 가려면 이혼 도장을 찍고 가라고 요구하고 있다"며 곤혹스러운 처지를 설명했다. 패션업체 G사 대표는 "지난 13일에도 개성공단에 들어가기로 예정돼 있던 일부 직원이 아예 출근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정상화 불투명할 듯

이번 사태는 간헐적으로 반복돼 왔던 북측의 이전 조치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 입주업체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종전에는 북측이 통행 · 통관 기준을 강화하는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개성공단 폐쇄 가능성이 눈앞의 현실로 닥쳤다는 것.기계부품업체 H사 대표는 "9일 처음 개성공단 통행이 중단됐다가 하루 만에 정상화됐을 때는 일회성 해프닝이라고 생각했고,바이어들에게도 그런 설득이 먹혔다"며 "이제는 언제든 다시 폐쇄될 수 있다는 게 입증된 만큼 통행이 풀려도 주문을 따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우려했다.

이와 관련,개성공단기업협의회는 15일 성명을 내고 "국내외 바이어들의 신뢰가 상실되면서 남북 화해의 상징이던 개성공단은 회복 불능의 고사상태에 이르고 있다"며 "개성공업지구법상 기업활동 보장 원칙에 합당하게 통행을 즉각 정상화하고 남북 당국은 이러한 상황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보장해 달라"고 촉구했다.

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