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이 결국 '출마'를 선택했다.

미국에 머물고 있는 정 전 장관은 12일(현지시간) 워싱턴특파원 간담회에서 4월29일 국회의원 재선거의 출마를 선언했다.

지역구는 자신을 키워준 텃밭인 전주 덕진이다.

정 전 장관은 출마 선언 전날까지 '출마-포기'의 선택을 놓고 고심을 거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 주류의 강한 반발 등으로 11일까지도 일부 측근들과 '불출마 선언문'을 가다듬는 등 포기를 검토했었지만 텃밭에서의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절박감'이 결국 그를 출마로 기울게 했다는 분석이다.

정 전 장관은 이날 간담회에서 "13년 전 설레는 마음으로 처음 정치를 시작했던 고향으로 돌아가 새롭게 출발하겠다"고 말했다.

그가 출마를 선택한 직접적 배경을 짐작케 하는 발언이다.

지난 대통령선거와 총선거에서 잇따라 낙선한 정 전 장관은 지난해 7월 미국으로 떠난 뒤 재기를 노려왔다.

그런 그에게 '우연찮게' 고향 전주 덕진이 열린 것이다.

측근들은 그의 출마를 놓고 엇갈렸다.

"자칫 잊혀질 수 있다" "천재일우의 덕진 출마를 놓쳐서는 안된다"는 출마론과 "자중해야 한다" "제2의 이인제가 될 것인가"라는 불출마론이 팽팽히 맞섰다.

하지만 정 전 장관의 고민은 덕진이 아니면 원내 진입의 기회 자체가 봉쇄될 수 있다는 지점에 있었다는 전언이다.

향후 10월 재보선에서 기회가 생긴다는 보장이 없는데다 지지부진한 상태가 지속될 경우 자칫 정치인 정동영이 잊혀질 수 있다는 고민이 컸다는 것이다.

이른바 '현실론'이다.

이제 공은 공천권을 쥔 당으로 넘어갔다.

정 전 장관이 막판까지 불출마를 고심했던 가장 큰 이유도 당 주류의 반발에 있었다.

정세균 대표는 이날 확대간부회의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모두가 당을 살리는데 힘을 합쳐야 할 때가 지금"이라며 "당의 책임있는 모든 분에게 '선당후사'(先黨後私)의 원칙이 중요한 덕목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의 출마에 부정적 입장을 피력한 것이다.

정 대표는 정 전 장관의 출마 여부에 언급을 자제해왔지만 그의 측근인 최재성 전 대변인은 "대선후보를 한 만큼 나처럼 지역구나 챙기는 사람과는 달라야 한다"며 '정동영 때리기'를 시도했었다.

이러한 기류에 비춰 당이 정 전 장관에게 전주 덕진의 공천을 줄지도 불투명하다는 관측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무소속 출마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 전 장관은 간담회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면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에 "정동영이가 들어가 도움이 된다면 그런 일(낙천)은 없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하지만 정 대표 주변인사들은 "호남 개혁공천을 통해 승부처인 수도권에서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 "정 전 장관이 공천을 받으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며 벌써부터 정 전 장관의 공천 가능성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를 공천할 경우 4.29 재보선 자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당 주류의 가장 큰 우려이다.

개혁 공천을 통해 유권자의 지지를 확보해야 할 판에 옛 인사의 재등판은 재보선 판 자체를 꼬이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컨설팅업체 '포스'의 이경헌 대표는 "민주당으로서는 당선 가능성이 높은 정 전 장관에게 공천을 주지않을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 경우 '개혁공천'의 전략적 의미가 희석, 재보선 전체의 전망이 어두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우려로 인해 정 전 장관의 공천을 놓고 당은 엄청난 내홍에 직면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특히 지난해 7월6일 당권을 쥐고 서서히 당을 장악해온 정 대표로서는 정 전 장관의 재등판이 큰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정 전 장관은 이날 선택에 앞서 당 지도부와 일체의 상의가 없었다.

신구 주류간 격돌이 벌어질 가능성마저 제기되는 까닭이다.

(서울연합뉴스) 신지홍 기자 shi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