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쉬운' 민항기 안전문제로 대남 압박..대미 대화 주문 의미도

북한이 한미 합동군사연습인 `키 리졸브'와 독수리 훈련을 이유로 남한 민항기의 영공통과를 사실상 제한하는 조치를 취한 것은 그동안 이들 군사연습을 비난하며 '말'로 하던 위협을 실제 '행동'화한 셈이다.

이들 군사연습에 대해 북한이 언론 매체들을 통해 `전투동원 태세'를 언급하는 방식으로 대응조치를 예고하던 것을 실제 행동으로 보여준 것으로, 이번 조치 자체는 군사행동이라고 할 수 없으나 그동안 "빈 말이 아니다"고 주장해온 대로 앞으로 더 강한 대응조치도 현실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북한의 이번 조치는 내용면에서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성명이라는 형식면에서 대남 압박용이다.

북한군 총참모부가 남북간 `군사적 대결태세'를 선언했지만 무력사용 카드를 쉽게 사용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동해영공 통과 민항기의 안전에 대한 위협을 통해 남한에 대한 압박을 가중하려 한 것이다.

성명은 조평통이 이미 발표한 남북간 정치군사적 긴장해소에 관한 합의 사항들의 전면 무효화 선언을 상기하며 현재 한반도에는 "군사연습 과정에 있을 수 있는 사소한 우발적 사건도 전쟁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는 아무런 법적, 제도적 장치도 없다"며 "북과 남이 고도의 전투태세에 들어가 있고 서로 총, 대포들을 겨눈 일촉즉발의 초긴장 상태에서 무엇에 의해 전쟁이 터질지 그 누구도 가늠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남한 민항기의 영공통과 제한 조치의 이유를 설명하면서 남북간 대결 국면을 부각시킴으로써 남한 내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여론을 겨냥한 것이다.

북한의 영공통과 제한 조치는 이러한 대남 압박과 함께 미국을 겨냥해서도 한반도의 불안정성을 거듭 강조함으로써 오바마 행정부를 가능한 조기에 북미 양자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이려는 의도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성명은 이번 군사연습에 대해 "미국에 새 행정부가 들어선 후 처음으로 벌리는 대규모 전쟁 불장난"이라고 말해 오바마 행정부에 대한 `실망감'을 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북한은 지난달 28일 유엔군사령부에 장성급회담을 먼저 제안해 2일에는 2002년 9월 이후 6년 6개월여만에 회담을 가졌고 6일에도 장성급회담을 갖는다.

미국과 대화에 목말라 있는 북한의 입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 대북 전문가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중국 왕자루이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의 면담 때 한반도 정세의 긴장을 원치 않는다며 6자회담의 진전을 언급했었는데 모두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를 겨냥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평통 대변인 성명이 북한의 영공중에서도 "특히 동해상 영공 주변"이라고 일부러 특정한 것은 함북 무수단리 미사일발사기지를 가리키는 것으로, 자신들이 인공위성이라고 주장하는 로켓 시험발사를 위협하는 어떠한 요소도 용납치 않겠다는 뜻이거나 이 기간 발사시험을 실시할 것임을 시사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실제로 이번 한미 합동군사연습에 상당히 겁을 먹었을 가능성도 내놓고 있다.

북한이 인공위성 `광명성 2호' 발사를 예고한 데 대해 미국과 일본 등에서 요격 가능성이 회자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으로선 이번 대규모 군사연습 과정에 경계심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조평통 대변인 성명은 "미국과 괴뢰호전광들이 그 무슨 선제타격이니, 요격이니 하는 망발들을 거리낌없이 줴치고(떠들고) 있다"며 "우리의 평화적인 인공위성 발사 준비를 구실로 남조선과 그 주변, 나아가 미국 본토와 태평양상의 미국 전략 핵무력까지 총동원해 하나의 세계대전을 치르듯이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광란적인 전쟁소동에 매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 방한했던 미국 하원 군사위원회의 로스코 바틀렛 의원은 지난 2005년 1월 방북했을 때 "북한이 얼마나 큰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있는지 알게 됐다"며 "북한은 위협을 가하려는 의도가 아닌 외부세계의 일상적인 발언조차 중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이러한 북한의 '피해망상'은 1984년 동독 베를린에서 열린 김일성 주석과 호네커 동독 공산당 서기장간 회담에서도 확인된다.

당시 김 주석은 "적들이 팀스피리트 훈련을 벌일 때마다 우리는 매번 노동자들을 군대로 소집해 대응해야 하며 이 때문에 1년에 한달반 정도 노동력에 차질이 생긴다"면서 "우리는 이러한 긴장상태를 없애기 위해 우리와 미국, 남한간의 3자대화를 제의했다"고 토로했었다.

(서울연합뉴스) 장용훈 기자 jy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