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전 합의한 법안들도 처리못해..75건중 14건 처리 불발

쟁점법안 처리 문제로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2월 임시국회가 30일간의 의사일정을 모두 소화하고 3일 막을 내렸다.

정면충돌 직전까지 갔던 여야가 막판 쟁점법안 처리일정에 합의한 것 정도가 의외의 성과로 평가될뿐, 이번 임시국회도 내용상으론 낙제점을 면키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한나라당은 경제살리기 국회, 민주당은 민생국회를 표방하며 임시국회를 시작했지만 쟁점법안을 둘러싼 정쟁으로 파행과 공전만 거듭됐다는 이유에서다.

연초 정국 최대현안으로 부각됐던 용산 재개발지역 농성자 사망사고에 대한 국회의 논의과정에서도 정치력 부재라는 정치권의 문제점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일각에선 이참에 국회가 재건축사업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지만, 실질적 행동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행정안전부장관 출신인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에 대한 인사청문회와 이달곤 행안부장관 인사청문회, 본회의에서 진행된 긴급현안질문 등 용산사고가 다뤄진 각종 의사일정들은 상대방에 대한 공격의 장으로 사용됐을 뿐이었다.

임시국회 중반 나흘간 진행된 대정부질문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되풀이됐다.

정책에 대한 질의보다는 당리당략을 위한 공방에 무게가 실렸다.

임시국회 중반까지 쟁점법안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는 아예 이뤄지지도 않았다.

여야 원내대표들은 지난 1월6일 쟁점법안 처리방식에 대한 합의를 도출했지만, 같은 문구를 놓고서도 해석이 엇갈렸기 때문에 상임위마다 진통을 겪었다.

결국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는 최대 쟁점법안인 미디어관련법안 상정문제를 놓고 지루한 공방만 반복하다가 한나라당 소속인 고흥길 위원장의 기습상정으로 논란이 증폭됐다.

여야는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에서도 선진적 정치와는 거리가 먼 모습만을 노출했다.

당직자와 소속 의원들의 보좌진이 본회의장 주변에서 비상대기하는 구태도 되풀이 됐고, 국회의원에 의한 로텐더홀 점거도 재연됐다.

이 과정에서 야당 당직자가 여당 국회의원을 폭행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한나라당이 쟁점법안의 직권상정을 위해 김형오 국회의장을 압박하는 과정도 매끄럽지 못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김 의장이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집권당인 한나라당 내부에서 `의장 탄핵' 주장이 제기되는 등 다소 선을 넘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은 입법부 스스로의 권위를 무너뜨린 행위라는 지적이다.

야당도 막판까지 이해하기 힘든 행보를 보였다.

쟁점법안 처리에 대한 여야 지도부의 합의 결과에 불만을 품은 야당내 강경파의 반발 때문에 3일 본회의가 최후의 순간까지 진통을 겪었다.

민주당과 자유선진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등 야당 의원들은 본회의장에서 잇따라 의사진행 발언 및 반대토론을 신청, 의사진행을 방해했다.

한 야당 의원은 반대토론 과정에서 횡설수설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단상을 향해 "이 양반아"와 같은 막말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

야당 의원들이 한나라당 의원의 제안설명을 제지하는 과정에선 가벼운 몸싸움도 벌어졌다.

결국 자정이 지나면서 회기가 종료됐고, 여야가 당초 처리키로 한 법안 75건가운데 14건이 처리되지 못했다.

여야의 쟁점법안 처리일정 합의 이후에도 향후 정국이 긍정적으로 전망되지 않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2월 임시국회 기간 목격된 모습들을 감안할 때 여야의 후진적 정치행태가 조만간 획기적으로 개선될 가능성은 높아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울연합뉴스) 고일환 기자 kom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