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오 국회의장이 여야협상 과정에서 제시한 중재안에 대한 각당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여야 모두 각자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아쉬워했지만 득실에 기초한 상대적 만족도 차원에선 상반된 분위기가 감지됐다.

일단 한나라당 내에선 김 의장의 중재안에 대해 '집권여당의 백기투항과 다름없다'는 부정적 평가가 우세하다.

사회 여론이 극명하게 갈리는 쟁점법안을 직권상정이란 형식을 통해 처리할 경우 적지 않은 부담이 되겠지만 중재안을 받아들일 경우엔 국정운영의 주도권 상실을 포함해 지지층 이반 등 더 큰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것.

내용상으론 최대쟁점으로 꼽혔던 미디어관련법안과 관련된 중재안 내용이 당내에서 집중포화를 받고 있다.

사회적 논의기구를 구성해 신문법, 방송법 등 핵심쟁점을 4개월간 논의한 뒤 국회법 절차에 따라 처리하자는 중재안은 한나라당의 입장을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중재안에 법안처리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처리시한과 관련한 언급이 없다는 점은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게 일반적인 당내 분위기다.

원내 고위당직자는 "6월까지 미디어법안을 논의하고 그 뒤 국회법에 따라 처리한다는 중재안의 모호한 문구에 동의할 경우 그때 가서 다시 민주당에 발목을 잡힐 것"이라면서 "처리시한이 포함되지 않는다면 협상의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중재안의 수용여부가 논의된 2일 새벽 의원총회에서 김 의장의 중재안이 집중포화를 받은 뒤 거부된 것도 당내에서 이 같은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반면 민주당은 표정관리에 나선 분위기다.

민주당이 절대적인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2월 임시국회에서 한나라당의 미디어법안 처리시도를 저지하는데 성공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연말 `폭력국회'에 대한 사회적 논란 이후 본회의장의 육탄저지가 부담스러워진 상황에서 일단 한나라당의 기세를 꺾고 시간을 번 것만해도 상당한 성과라는 것.
특히 중재안에 미디어법안의 처리시한에 대한 언급이 포함되지 않은 점도 적지않은 소득으로 평가하고 있다.

향후 진행될 미디어법 논의과정에서도 민주당이 주도권을 쥐게 됐다는 것이다.

"중재안은 59점짜리에 불과하지만 국민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합의했다"고 불만스러운 반응을 보였던 정세균 대표가 막상 한나라당이 중재안을 거부하자 "당장 받아들여야 한다"는 반응을 보인 것도 중재안에 대한 민주당의 만족도를 방증하는 대목이다.

한편 민주당의 일부 강경파들은 `절반의 성공'이란 평가도 내놓고 있다.

한 재선 의원은 "1월6일 합의정신을 기준으로 하면 이번 잠정합의안은 많이 후퇴한 것"이라며 "그럼에도 소수 야당이 거대여당을 막을 방법이 없어 타협한 셈"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고일환 강병철 기자 kom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