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2차 입법 전쟁을 앞두고 민주당을 협상 테이블로 유인하는 방향으로 원내 전략을 수정했다. 한나라당은 4일 한 · 미 자유무역협상(FTA) 비준동의안,비정규직보호법 개정안 등의 본회의 처리를 4월 국회로 미룰 수 있다며 '속도조절' 가능성을 시사했다. 또 금산분리 완화시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소유 한도를 조정할 수 있다며 법안 내용에 대한 유연성도 내비쳤다. "2월 내에 반드시 원안대로 처리하겠다"는 당초의 입장에서 한발 물러선 것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한나라당 간사인 박종희 의원은 이날 금산분리 완화를 골자로 하는 은행법 개정안과 관련,"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소유 한도를 10%로 고치면 재벌이 은행을 소유한다고 하는데 야당과의 협상을 통해 10%를 8~9%로 조정,절충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개인적으로 2월 국회에서 이 법안을 이유 불문하고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고 논의를 해보자는 것"이라면서 "이념 법안도 아니고 이명박 정부의 공약인데 토론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산분리 완화 법안은 지난달 상임위에 상정됐지만 민주당이 대표적인 'MB악법'으로 규정하고 저지 의사를 밝히면서 토론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박 의원의 이날 발언은 '법안 내용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으니 일단 대화에 응해 달라'는 대야(對野) 유화 제스처로 풀이된다.

앞서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최고위원 · 중진 연석회의에서 "2월에는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가 FTA 문제를 상임위 차원에서 처리를 해주면 본회의는 민주당의 요구대로 2월을 넘기고 4월 국회에서 처리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6일 FTA 문제에 대해 합의할 때 민주당에서 2월만 피해주면 어느 시점에라도 표결처리에 동의하겠다고 해서 합의서를 쓸 때 '빠른 시일 내에 협의 처리하도록 노력한다'는 문구가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홍 원내대표는 이어 "2월에는 힐러리 미국 국무장관이 오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미국과 이야기를 하고 처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며 "FTA 문제는 이제 국회에서 대립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바마 행정부 출범 후 미국 내 상황 변화를 지켜보고 처리해야 한다'는 민주당의 요구를 들어준 모양새를 취하게 됐다는 얘기다. 홍 원내대표는 야당과 노동계가 반발하는 비정규직법안의 경우도 4월 처리 입장을 시사했다.

한나라당의 이 같은 움직임은 입법전쟁의 '전선(戰線)'을 최대한 줄여 2월 임시국회에서 입법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협상에 앞서 카드를 다 보여주는 '홍준표식 협상 스타일'이 그동안 야당에 이용만 당해왔다는 점에서 '대야 유화 제스처'가 효과를 발휘할지는 불투명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여야 간 논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벌써 절충안이 나오는 것이냐"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