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30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성명을 통해 합의사항 폐기 방침을 천명한 데 대한 속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조평통은 이날 성명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미국 방문 중에 언급했던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의 통일' 발언과 민간단체들의 대북 전단 살포,급변사태론,선제공격론 등을 거론하며 "남한이 합의사항들을 무참히 파괴 · 유린했다"고 합의사항 폐기의 책임을 남측에 돌렸다. 조평통은 또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관련해서는 "미국이 일방적으로 그어놓은 불법 · 무법의 북방한계선을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면서 NLL 폐기 선언의 정당성을 설명했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 내정자에 대해선 "우리와 끝까지 엇서나가겠다는 것을 세계 면전에 선언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북한의 이번 조치는 미 오바마 정부의 관심을 끌고 후계구도설로 어수선한 북한 내부를 결속시키는 등 다목적용 조치로 분석된다. 하지만 실제 군사도발을 위한 명분쌓기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최근 외교가에서는 오바마 신정부 출범 후 미국의 대외 정책에서 북한 문제가 가자지구 분쟁 등의 현안보다 후순위로 밀릴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돼왔다. '통미봉남'을 기본틀로 미국과의 대화에 신경을 써온 북한으로서는 신경이 쓰이는 대목이다. 지속적으로 북한 문제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제고하기 위해 노력해 온 북한이 남북간의 긴장을 고조시켜 조속한 시일 내에 북 · 미 간의 대화를 이끌어내겠다는 계산이라는 관측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과 차기구도 문제 등으로 어수선해진 북한의 내부 정치 상황을 타개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김 위원장의 생일(2월16일)을 앞두고 김 위원장의 건강에 대한 우려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고 후계 문제도 북한 주민들 사이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어 자칫 발생할 수 있는 권력 누수 현상을 남한과의 긴장관계 조성을 통해 차단하려 한다는 것이다. 취임 1주년을 맞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강력한 비판으로 '남남갈등'을 촉발시키려 한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낮은 국정 지지율과 불안한 경제 상황을 이용해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 전환을 압박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런 북한의 조치로 당장 남북간의 군사 충돌 사태 등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장기적인 남북관계 경색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럼에도 북한도 서해상에서의 충돌 등으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킬 경우 대미 협상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지난 23일 김 위원장이 왕자루이 중국 대외연락부장을 만난 자리에서 "한반도 정세의 긴장상태를 원치 않는다"고 언급한 것도 당장의 군사 충돌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지 않는 이유다.

하지만 오바마 신정부의 대북정책 수립이 지연되거나 대화 진전이 지지부진할 경우 긴장 조성을 시도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 경우 매년 3월쯤 열리는 한 · 미 합동의 '키 리졸브' 연습이나 NLL 주변 해역에서의 긴장도가 높아지는 4~6월 꽃게잡이철에 북한이 도발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구동회 기자 kugij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