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질이나 하려면 의원수 줄여라"
"오늘 의원님이 개시하는 거니까 많이 좀 사줘요. "

설 연휴 첫날인 지난 24일 서울 강서구 등촌동 주공7단지 임대아파트 앞 노점상 밀집지역.정오를 훌쩍 넘긴 시간인 데도 손복자 할머니(가명 · 65세)는 김성태 한나라당 의원이 첫 손님이라고 했다.

이곳에서 7년째 채소를 팔고 있다는 손 할머니는 "설 대목이라는데 아침 10시부터 저녁 7시까지 팔아도 3만원을 남기기 힘들다.

날씨도 춥고 죽을 맛"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김 의원이 산 말린 호박 3000원어치를 봉지에 담으며 "국회의원들이 왜 싸움질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경제는 좀 살려달라"고 말했다.

이날 하룻동안 김 의원과 동행하며 들어본 설 민심은 추운 날씨만큼이나 매서웠다.

등촌 제1복지관에서 점심식사를 하던 노인들은 "후원금이 줄어서인지 복지관에 난방이 잘 안 된다"며 "설인데 마음까지 춥지 않게 난방을 좀 더 해달라"고 하소연했다.

주공 임대아파트 106동에 산다는 한 주부는 "경기도 안 좋은데 관리비를 좀 내려줬으면 좋겠다"고 했고,전동 휠체어를 타고 있던 이정자씨(60세)는 "동사무소에서 지급하는 휠체어 배터리가 너무 쉽게 닳아 돈이 많이 든다"고 걱정했다.

다른 지역 의원들이 전한 민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강기정 민주당 의원(광주 북갑)은 "대주건설,C&그룹 등 지역의 큰 기업들이 퇴출된다는 소식에 하청기업들에 대한 피해 대책을 마련해달라는 주문이 많았다"고 전했다.

강 의원은 "지난 추석까지만 해도 경제상황과 현 정부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지만 이번 설에는 민심이 전반적으로 크게 악화된 것 같다"고 말했다.

조해진 한나라당 의원(경남 밀양)은 "대선 때 500만표 이상 얻고 총선에서도 172석이나 갖게 해줬는데 왜 일을 추진력 있게 못하고 무기력하냐는 등 한나라당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컸다"고 말했다. 같은당 장제원 의원(부산 사상)은 "지방 상공인들을 만나보니 돈맥경화가 가장 큰 문제였다"고 진단했다.

용산 철거민 사망 사건과 관련해서는 여론이 엇갈렸다. 김희철 민주당 의원(서울 관악을)은 "경찰과 용역업체들을 탓하는 목소리가 많았지만 철거민연합의 과격 폭력시위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홍정욱 한나라당 의원(서울 노원병)은 "지역에 개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어 용산 사태를 남의 일로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많더라"며 "개발에 대한 기대와 함께 세입자 문제에 대한 우려도 있어 주민들이 다소 혼란스러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부동산 경기에 대한 우려도 많았다. 서울 송파을이 지역구인 유일호 한나라당 의원은 "연휴 기간에 부동산 경기를 조사했는데 공인중개사 중 지난 한 달 동안 한 번도 거래를 못 해봤다는 사람이 수두룩하더라"며 "정부가 빨리 규제완화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았다"고 밝혔다.

지역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어도 '국회의원들이 그만 싸우고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요구는 전국 어디서나 똑같았다.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서울 중구)은 "한 어르신께서 '왜 자꾸 싸우냐'고 물으시길래 '나라 생각하는 건 똑같지만 방법이 좀 달라서'라고 답했더니 이해 안 된다는 표정을 지으시더라"고 말했다. 홍정욱 의원은 "국회의원들이 너무 많은 것 같으니 숫자를 줄이라는 주문도 있었다"고 전했다.

유창재/강동균/박진규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