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연설 8분간 국회 `맹비판'

이명박 대통령은 12일 "오늘은 당면한 `경제위기' 만큼이나 심각한 `정치위기'에 대해 말씀드리겠다"는 말로 올해 첫 라디오연설을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첫 라디오연설 이후 줄곧 경제문제를 거론하며 국민적 단합을 당부하던 때와는 목소리의 무게도 달랐다.

특히 이 대통령은 연설 내내 "참으로 놀랐습니다"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정말 앞이 캄캄했습니다"라는 직설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등 작심한 듯 최근 국회 폭력사태를 신랄하게 비판, 정치권 논란을 예고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이 대통령의 오늘 연설은 국민의 입장에서 바라본 국회"라면서 "정치가 이런 식이어서는 경제살리기도 어렵다는 인식을 강조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 대통령은 최근 국내외 언론을 통해 국회 폭력사태와 관련한 보도를 접한 뒤 상당한 충격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첫 라디오연설의 주제를 정치 문제로 정하는 데 대한 부담도 있었지만 이 대통령은 "이런 일이 반복돼서는 선진화도 어렵다.

이번 기회에 국회도 달라져야 한다"며 연설팀에 강한 메시지를 주문했다는 후문이다.

이 대통령은 연설 첫머리에 해머와 전기톱이 등장한 국회 폭력사태에 대해 "국회에서의 폭력은 한국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한국 특유의 거친 민주주의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논평한 외국언론을 소개하며 "어떻게 이룬 민주주의인데 이렇게 국제적 경멸이 대상이 되다니 대통령으로서 정말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또 "회의실 문을 부수는 해머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때리고 제 머리와 가슴을 때리는 것 같이 아팠다"고도 했다.

이 대통령은 그러면서 "선진일류국가는 결코 GDP(국내총생산)만 올라간다고 이룰 수가 없다"면서 "정치의 선진화가 따라주지 않고 국격이 높아지지 않으면 선진화는 불가능하다"고 정치권을 직접 겨냥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정부는 물론 민간까지 나서서 브랜드가치를 높이기 위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이 시점에 그런 활동을 지원하고 이끌어야 할 정치가 오히려 공든탑을 무너뜨리고 있지 않나"라면서 "국회 폭력사태에 대해 `혹 아이들이 보면 어쩌나.

외국인들이 보면 어쩌나' 마음 졸인 게 비단 저만은 아닐 것"이라며 국가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리는 `주범'으로 정치권을 지목했다.

이 대통령은 또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서민들은 일 때문에 잠시 가게앞에 세워놓은 차도 딱지를 떼이고 반복하면 면허정지까지 당하지 않느냐"면서 법치주의가 실종된 국회를 거듭 몰아붙였다.

이어 이 대통령은 미국 워싱턴의 한국전 참전공원에 있는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는 글귀를 소개하면서 "국민은 실망하고 있지만 이번 일을 국회 스스로 개혁하는 기회로 삼는다면 국민들은 다시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며 국회의 변화를 촉구했다.

약 8분 분량의 연설 내내 정치권을 강도높게 비판한 이 대통령의 결론은 역시 `경제살리기'와 `선진일류국가'에 대한 의지였다.

이 대통령은 "저는 국민앞에 다시한번 저의 결심을 다지고자 한다"면서 "금년 한해 저는 이념이나 지역을 떠나 경제를 살리고 서민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에 전념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대통령은 그러면서 "금년 1분기 3개월과 2분기 3개월, 6개월이 경제가 가장 어려운 시기이고 그래서 법안처리가 더더욱 시급하다"면서 "법안처리가 늦어지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특히 서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라며 국회에 조속한 법안처리를 촉구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분열을 조장하고 통합을 가로막는 정치적 양극화야 말로 경제적 양극화 못지 않게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이자 극복해야 할 과제가 아닐 수 없다"면서 "선진일류국가를 앞장서 만들어내는 가장 큰 원동력은 역시 정치"라고 다시한번 강조했다.

한 참모는 "오늘 연설은 박형준 홍보기획관, 김두우 정무기획비서관, 박선규 언론2비서관, 정용화 연설기록비서관 등의 주도로 성안됐으나 이 대통령이 직접 강한 메시지를 내놓은 것으로 안다"면서 "한일 정상회담 일정과 겹쳐 시점이 적절치 않다는 내부 지적도 있었으나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고 전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승관 기자 human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