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의 자회사였던 휴켐스를 헐값에 사기 위해 정대근 당시 농협중앙회장에게 20억원의 뇌물을 건넸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다.

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민병훈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첫 공판에서 박 회장 변호인은 "20억원을 건넨 것은 맞지만 휴켐스 인수와는 관련이 없었고, 평소 농협을 위해 일한 정 회장을 돕자는 뜻이었다"며 뇌물공여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박 회장 측은 "정 회장 측에 편의와 도움을 명시적으로 요청하지 않았으며 휴켐스 인수 과정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

태광실업과 농협 직원들이 일부 미리 협의를 했지만 이 또한 태광실업이 낙찰받을 경우 원활한 인수를 진행하기 위해서였다"라고 주장하며 입찰방해 혐의도 부인했다.

하지만 세종증권과 휴켐스 주식 차명거래에 따른 양도소득세 47억2천여만원과 홍콩법인 APC에서 차명으로 받은 배당이익의 종합소득세 242억여원 등 총 290억여원의 세금을 포탈한 혐의는 대체로 시인했다.

다만 홍콩 법인을 통해 탈루한 세금을 개인적으로 쓴 것이 아니라 태광실업 계열사의 해외 진출 사업비 등으로 썼으며 검찰이 차명거래로 기소한 부분 중 일부는 부인이 실제 자신의 자금으로 거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의 한 호텔에서 박 회장에게서 100만원권 수표 2천장, 즉 20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정 전 회장의 변호인은 "돈을 받았지만 수사가 시작되기 전에 돌려줬고 휴켐스 매각과는 관계없는 돈이었으며 매각에 구체적으로 관여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입찰방해 혐의로 정 전 회장과 함께 구속기소된 오세환 농협중앙회 전 상무 측은 "비록 입찰정보를 제공하긴 했으나 농협의 이익을 위해 최대한 높은 값을 받으려 노력했고 그 결과 태광실업 측으로부터 항의와 욕설까지 들어야 했다"며 혐의를 인정하고 선처를 호소했다.

검찰은 "정 전 회장이 박 회장으로부터 받은 돈을 측근 차명계좌로 관리하다 현대차 사건으로 구속된 2006년 8월 반환했고 1심에서 무죄 석방되자 다시 20억을 받았다.

그 후 5억여원은 주식 투자 등으로 소진하고 나머지 돈도 박 회장에 대한 국세청 세무조사가 시작되자 돌려줬다"고 반박했다.

이날 정 전 회장은 재판부에 "억울한 일이 없도록 잘 보살펴달라"고 고개를 숙였고 박 회장은 재판부가 발언 기회를 줬지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박 회장은 세종증권 등 주식 차명거래에 따른 양도소득세 47억여원과 홍콩법인에서 차명으로 받은 배당이익의 종합소득세 등 290억여원을 포탈하고 2006년 2월 정 전 회장을 만나 휴켐스를 유리한 조건으로 인수할 수 있게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20억원을 주고 입찰정보를 건네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정 전 회장에게는 박 회장과 연관된 것 외에도 세종증권을 인수하는 대가로 세종캐피탈 홍기옥 사장으로부터 50억원을 받은 혐의도 적용됐다.

그는 "세종증권 인수는 태스크포스를 거쳐 정당하게 이뤄진 것이고 남경우 전 농협사료 대표에게 이를 지시한 적이 없다"고 부인한 반면 남 전 대표는 전적으로 정 전 회장의 지시에 따라 이뤄진 일이라며 책임을 떠밀었으며 김형진 세종캐피탈 회장은 "합법적으로 자문료를 지불하려 노력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한편 대검 중수부는 박 회장이 여ㆍ야 정치인과 고위 관료 등에게 거액의 금품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가족과 주변 인물의 계좌를 계속 추적하고 있으며 세종증권 미공개 정보 이용 의혹이나 휴켐스 매매 배임 의혹 등 여죄 수사를 이달 안에 정리할 계획이다.

(서울연합뉴스) 차대운 이세원 기자 setuz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