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도 곳곳 모포ㆍ신문 뒹굴어… 野당직자들 '새우잠'
여성보좌관 "정치권 있는게 결혼 걸림돌 될까 걱정"


2009년 '기축년' 새해를 맞은 1일 국회는 황량한 모습이었다. 여야 의원과 보좌진,국회 사무처 직원들의 얼굴에는 새해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언제 있을지 모를 충돌에 대한 긴장감과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대치 상황에 따른 피로감이 역력했다.

민주당이 1주일째 본회의장을 점거 중인 가운데 국회 본청의 중앙홀에는 각종 집기와 모포 책 신문 등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2층과 3층 주변의 복도에는 곳곳에 바리케이드가 세워졌다. 민주당 당직자와 보좌진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잠을 청하거나 TV 주위에 둘러앉아 멍하니 신년프로를 시청했다.

◆"기관지 악화.허리 질환 재발"호소

국회 의사당 본청은 사실상 '여관'으로 전락했다. 의정활동 등 국회의 통상적인 업무가 중단된 상태에서 민주당 의원과 보좌진,비상대기 중인 국회 경위와 방호원 등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1주일 넘게 투숙을 하고 있어서다.

이렇다 보니 밤만 되면 상임위 회의실과 복도,지하 기도실 등에는 잠을 자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농성 초기에 매트리스와 모포를 보급한 민주당은 지난 31일부터는 침낭과 수건 양말 등도 나눠주고 있다. 50여명씩 밤샘 근무를 하고 있는 경위와 방호원들은 물품 지원도 없어 본청 내 사무실에 흩어져 의자에 앉아 새우잠을 자고 있다.

이들의 식사를 해결하는 것도 큰 문제다. 민주당은 통행이 자유로운 일부 당직자를 통해 새해 아침 떡국을 사오는 등 음식을 조달했지만 국회 사무처가 이를 저지하고 나서면서 박계동 국회 사무총장과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사무처는 농성이 진행되는 기간 동안 주말에는 열지 않는 구내식당에서 배식을 하기로 했다.

농성이 길어지면서 '투숙자'들은 각종 애로사항을 토로하고 있다. 밀폐된 본회의장에 '거주'하는 민주당 의원들은 탁한 공기에 가장 힘들어한다. 박병석 정책위의장은 "기관지나 폐가 안 좋아진다고 호소하는 의원들이 점점 늘고 있다"고 말했다. 김상희 의원 등 몇몇 의원들은 불편한 잠자리에 허리 질환이 악화돼 통증을 호소하고 있다. 1,2층 일대에 출몰하는 쥐벼룩도 문제다. 한 방호원은 "쥐벼룩에 물려 잠을 이루기 힘들다. 어젯밤에도 사무실에서 쥐를 5마리나 잡았다"고 하소연했다.

◆새해 소망은 '국회 평화'

여야 보좌진과 국회 직원들은 한 목소리로 제발 국회가 평온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나라당의 이모 보좌관은 "오래 알고 지낸 야당 보좌관들과 서먹한 관계가 돼 마음이 무겁다. 하루 속히 여야 관계가 정상화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 여성 보좌관은 "서른을 넘긴 미혼인데 정치권에 있다는 게 결혼에 걸림돌이 될까 걱정"이라고 속상해했다. 민주당의 김모 보좌관은 "광주에 사는 아내와 딸을 못 본 지 2주일이 넘었다. 딸이 언제 올 거냐고 매일 전화하는데 올해는 주말마다 가족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본청을 지키던 한 방호원은 "주변에 기자들이 있거나 카메라만 들이밀면 (주목을 끌기 위해) 방호원에게 고함을 지르거나 몸싸움을 거는 의원들이 있다"면서 "올해는 국회가 평온해 이런 분들을 안 봤으면 한다"고 토로했다. 국회 경비대로 전입온 지 한 달밖에 안 됐다는 한 전경은 "국회가 정말 이런 곳일 줄은 몰랐다. 올해는 일년 내내 조용했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노경목/강동균/이준혁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