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국회 첫 정기회가 이틀 뒤면 막을 내린다.

10년만의 여야교체 이후 지난 9월1일 문을 연 정기국회는 구태 탈피에 실패했다는 평이다.

예산안 법정 처리시한을 넘긴 `위헌'을 반복했고, 국정감사와 쌀 직불금 국정조사 내내 신구(新舊) 정권의 허물 들추기로 일관하는 등 정쟁에 몰두했다는 지적이다.

야당은 발목잡기에 치중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고 한나라당은 야당이던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세월'로 규정, 과거 정책을 전면 부정하면서 정쟁의 불씨를 제공했다.

특히 내년도 예산안 늑장처리는 부실국회의 상징이다.

한나라당이 실물경기 활성화를 명분으로 내놓은 종합부동산세와 법인세, 상속.증여세 등 예산 부수법안인 감세법안을 민주당이 `부자감세'라며 전 상임위 일정을 보이콧하는 등 정쟁 국회가 재연됐다.

여기에다 한나라당은 공공연하게 `강행 처리'를 주장, 국회 공전을 부추겼다.

여야가 국회를 타협의 장으로 만들겠다던 공언은 허언이 됐고, 경제 한파로 움츠러든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피할 길이 없었다.

헌법이 규정한 `12월2일'이라는 예산안 처리 시한은 또다시 무용화됐다.

여야는 예산안 12일 처리에 뒤늦게 합의했지만 짧은 심사 기간 등을 감안하면 예산안 부실 심사가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추경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도 국회는 난맥상을 드러냈다.

고유가로 인한 민생고 해결을 위해 긴급 편성된 추경안은 여야가 처리일정(9월11일)에 합의하고도 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에 대한 보조금 지급 문제를 둘러싼 대치 끝에 일주일 뒤에야 2천969억원이 삭감된 4조8천654억원을 통과시켰다.

한나라당은 추석 전 통과를 위해 18대 국회 첫 강행처리라는 악수를 뒀지만 정족수 부족으로 무산되는 등 거대여당의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민주당은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헌법재판소 접촉 발언'을 문제삼아 국회를 파행시켰지만 진상조사 결과 별다른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

이 같은 정쟁의 와중에 국회 본연의 업무인 법안 처리 건수는 불과 58개에 그쳤다.

7일 현재 계류 법안이 2천325개임을 감안하면 파업 수준의 국회였다는 지적을 면키 어렵다.

정기국회의 `백미'인 국정감사 역시 쌀 직불금 파문을 비롯한 굵직한 현안이 줄을 이었지만 전.현정부 책임론만 난무한 `부실국감'에 그쳤다.

몰아치기 국감, 호통치기, 집단 편들기 등 고질적인 악폐 역시 반복됐다.

이는 원구성 지연에 따른 준비부족에 주된 원인이 있지만 불과 20일동안 478개 피감기관을 감사해야 하는 국감 제도의 허점도 짚어야 한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국회의장 자문기구인 국회운영제도개선 자문위가 지난달 9일 상시국회 도입안과 감사기능의 국회이관 방안 등을 골자로 하는 `일하는 국회' 방안이 제시되기도 했지만 실현 여부는 불투명하다.

쌀 직불금 파문의 경우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와 감사원의 은폐의혹, 현정부 고위공직자들의 부도덕성 논란을 중심으로 공세에 치중했다.

민주당은 위법성에 대한 확인절차 없이 직불금 수령자 실명을 공개하면서 당사자들의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정기국회가 이 처럼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지만 여야가 막판 예산안 처리에 합의한 것은 그나마 위안을 주고 있다.

하지만 여야는 정기국회 직후 열릴 임시회에서도 각종 법안을 둘러싼 대립이 불가피하다.

한나라당은 좌편향을 바로잡겠다며 금산분리 완화와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법안, 집단소송법 개정안, 사이버 모욕죄 신설법안, 병역법 개정안 등을 내놓고 있으나 민주당은 과거로의 회귀를 저지하겠다며 일전불사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조기비준 여부를 둘러싼 여야간 한판 대결도 남아있어 이래저래 연말 임시국회는 소용돌이에 휩싸일 전망이다.

(서울연합뉴스) 이상헌 기자 honeyb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