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군사당국이 8개월여 만에 만났지만 아무런 소득 없이 헤어져 남북간 관계에 냉각기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남북은 2일 오전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군사실무회담을 열고 군 당국간 합의사항 이행 문제 등을 논의할 예정이었지만 원론적인 입장차만 확인하고 세부적인 협의를 진행하지 못했다.

특히 이번 회담은 군사회담으로는 지난 1월25일 이후 8개월여만이고, 새 정부 출범 이후 6자회담 차원의 대화를 제외하고 처음으로 열린 당국간 회담이라는 점에서 기대감이 높았지만 양측은 이를 충족하지 못하고 회의를 종결했다.

더욱이 양측은 1시간 30분가량 진행된 회담에서 다음번 회의 날짜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협의를 하지 못해 군사 당국간 접촉의 '추진력'을 얻는데도 실패했다.

사실 이런 결과는 북측이 지난 25일 군사실무회담을 전격 제의했을 때부터 어느 정도 예견되기는 했다.

북측이 군사당국 실무자들끼리 시급히 논의해야 할 사안이 두드러지지 않은 시점에 회담을 덜컥 제의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북측이 최근 경색된 남북관계의 책임을 남측으로 돌리는 한편 '전단(삐라) 살포'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에 대한 남측 정부기관들의 과도한 언급 등에 대한 불만을 쏟아놓으려고 회담을 제의한 것으로 관측하기도 했다.

실제로 북측은 이번 회담에서 남측 민간단체들이 북한을 비방하는 전단을 살포하고 있는 사례를 구체적으로 나열하면서 이에 대한 사과와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를 강력히 요구했다.

특히 북측은 전단 살포행위가 계속되면 개성공단사업과 개성관광에 엄중한 후과(나쁜 결과)가 있을 것이며, 개성과 금강산지구 내에 남측 인원의 체류가 불가할 수 있다며 강력히 항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측이 전단살포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전단 내용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비난하는 글이 실려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전단이 최근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과 맞물리면서 내부적으로 민심이 동요할 가능성을 차단하고자 남측에 강한 경고를 보낸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그렇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북측의 경고가 단순한 전단살포 때문 만은 아니며 김 위원장의 신변을 둘러싸고 남측에서 '과도한 추측'을 하고 있는 데 대한 강한 불만 표시로 해석하고 있다.

북측에서 김 위원장의 건강문제를 금기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북측 대표들도 이를 직접 언급하는 대신 전단내용을 문제삼아 우회적으로 경고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 회담 관계자는 "비무장지대에서 전단살포 행위는 군사당국간 합의사항으로 우리 당국에선 철저히 이를 준수하고 있다"면서 "다만 일부 단체에서 전단살포를 하고 있는데 이 문제는 법률적으로도 제한이 있어 북측이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을 했다"고 말했다.

북측은 회담에서 한미 군사합동훈련과 남측의 무력증강 등을 거론하면서 남측이 한반도 정세를 대결국면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주장도 펼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우리 측은 북측의 전단살포 항의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북측이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부적절한 표현을 사용하면서 지속적으로 비방하는 것은 남북합의에 배치된다고 주지시키고 즉각 비방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이어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등 다방면에서 모든 수준의 대화가 전면적으로 재개되어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이는 이명박 대통령이 8.15 광복절 기념식 등에서 '북한과의 전면적인 대화'를 강조한 것을 이번에 다시 한번 북측에 주지시킨 것으로 해석된다.

남측은 또 개성 관광객과 개성공단 사업자들이 남북관리구역을 출입, 통행하는데 불편을 겪고 있다며 북측에 시정을 요구했으나 북측은 전단살포 중단 등의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고 거부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회담 관계자는 "회담에서 금강산 관강객 총격 사망 사건의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신변안전보장 대책 등도 촉구했다"면서 "그러나 북측은 기존에 발표한 내용을 그대로 반복했다"고 말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8개월여간 회담이 열리지 않았고 새 정부 들어 처음 열린 회담이어서 어떤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회담이라기 보다는 쌍방이 시급히 제기해야 할 문제를 전달하고 협의하는 성격의 회담이었다"며 "다음 회담 날짜에 대한 구체적인 협의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서울연합뉴스) 김귀근 기자 three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