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저 투표율 속에서도 상당수 국민은 권리이자 의무인 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투표소를 찾았다.

이들은 악천후와 고령(高齡),악지형 등을 무릅쓰고 투표소를 찾아 휴일만 즐긴 시민들과 대조를 보였다.

○…해발 1708m 설악산 대청봉 인근 중청대피소 대청분소에 근무하는 설악산국립공원사무소 직원들은 전 직원이 산을 타고 내려와 투표에 참가했다.

전체 직원 9명 가운데 휴가 중인 3명과 부재자 투표자 2명을 제외한 4명이 전부 선거에 참여한 것.투표를 위해 직원들은 2개 근무조로 나눴다.

2명은 하루 전날 하산,아침 일찍 투표 마치고 4시간여를 걸어 대피소로 복귀했고 이후 2명이 하산해 투표를 마쳤다.

○…14가구 26명이 살고 있는 '작은 섬' 전남 신안군 압해면 효지도 주민 12명도 강풍과 폭우 속에 2㎞의 바닷길을 건너와 귀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

이들은 0.8t급 '효지도선'을 타고 쌍용초등학교 제2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쳤다.

박진우 효지도 이장(69)은 "도선을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로 비바람이 불고 파도도 높았지만 주민들의 투표 열의가 높아 함께 배를 타고 투표를 하게 됐다"면서 "효지도는 지난 대선 때도 전 주민이 투표했다"고 말했다.

○…경기도 내 최고령자인 정매 할머니(117·용인시 이동면 묵리)도 한 표를 행사했다.

주민등록상으로 1891년 1월24일생인 정 할머니는 오전 10시30분께 용인경찰서 이동파출소 순찰차의 도움으로 용인시 이동면 천리 용천초등학교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며느리 김복수씨(76)와 함께 투표를 마쳤다.

김씨는 "시어머님은 눈이 잘 안 보이고 혼자 걸을 수 없을 정도지만 투표를 하기 위해 오전 6시부터 곱게 단장하고 순찰차를 기다렸다"며 "어머님이 대통령에 이어 국회의원도 뽑게 됐다고 크게 기뻐하셨다"고 말했다.

○…지난 2월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김동태씨(73) 등 사할린 동포 4명도 이날 오전 8시께 인천 남동구 동방초등학교에 마련된 투표소를 찾아 투표를 마쳤다.

김씨는 "처음 하는 투표라서 얼떨떨했지만 투표를 하고 나니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다시 확인되는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경남 창녕군 창녕읍 제1투표소(명덕초등학교)는 축제 분위기에서 선거가 치러져 화제가 됐다.

투표소 입구에는 '투표하는 즐거움을 누리세요'라고 적힌 대형 걸개가 걸렸고,투표소로 들어가는 복도와 벽도 풍선들로 예쁘게 장식됐다.

이 지역 비사벌관악단 회원들은 자원봉사자로 나서 투표하러 온 주민들에게 연주를 들려줬다.

또 창녕군 애완동물수출협의회가 각종 애완동물을 구경할 수 있도록 전시하고 창녕군 자원봉사협의회 회원들은 커피와 녹차를 대접했다.

○…중부전선 최전방지역으로 유권자가 128명에 불과,전국에서 제일 작은 투표구인 강원 철원군 '통일촌' 주민들도 소중한 주권을 행사했다. 이호봉 이장(71)은 "통일촌은 70년대 군인 제대자와 민간인 60가구가 입주해 고추와 벼농사를 짓는 마을"이라며 "원주민들이 힘겹게 개척한 농경지를 둘러싼 토지분쟁이 빈번한 만큼 국회의원들이 이런 문제를 해결해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북단 마을인 경기도 파주 민간인통제선(민통선) 지역의 대성동마을과 통일촌,동파정착촌(해마루촌) 등 3개 마을 주민들도 바쁜 농사철임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일꾼을 뽑는 데 참여했다.

○…이번 선거에는 기상악화로 섬 통행이 어려워지자 중·대형 함정들이 동원되기도 했다. 해양경찰청은 강풍을 동반한 높은 파도로 남해 지역 소형 선박들이 섬 지역을 드나드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고 중·대형 함정 10척을 긴급 추가 배치했다. 이들 함정은 섬 지역주민을 투표소까지 보내고,투표함을 수거하는 역할을 했다.

박수진 기자 notwom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