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러 이 때 온 게 아니다" "갖고 온 게 있다"

송환 첫날 밤을 구치소에서 보내고 이틀째 조사를 받기 위해 17일 오전 10시12분께 서울중앙지검 청사로 호송된 김경준씨는 크게 피로한 기색은 없었다.

김씨는 수사관 10여명에 에워싸여 청사 10층에 있는 조사실로 향하면서 "`일부러 이 때 온 게 아니다'는 뜻이 뭐냐"는 물음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입증 자료를 들고 왔느냐"고 재차 묻자 "갖고 온 게 있다"고 짤막하게 답했다.

수사관들은 지하 주차장을 통해 김씨를 데려가려다 취재진이 기다리자 구치감 쪽으로 다시 차를 돌리는 등 숨바꼭질을 한 뒤 서둘러 김씨를 조사실로 데려갔다.

검찰이 김씨와 언론의 접촉을 차단, 김씨가 충분히 말을 할 기회가 없는 탓이기는 하겠지만 전날 발언에 대해 "`기획입국'이 아니다"거나 "정치적 의도가 없다"는 등의 각종 해석이 나오게 한데 이어 이날 언급한 내용도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의 입장을 반박할 자료가 있다"거나 "단순히 본인 무혐의를 뒷받침할 증거가 있다"는 뜻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등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미국으로 도피한 뒤 6년 가까이 지난 시점에 국내에 모습을 드러낸 김씨는 공항에서 간간이 엷은 미소를 드러낸 데 이어 검찰청사에서는 파안대소에 가까운 웃음까지 보였다.

김씨는 이날도 전날처럼 박모 변호사를 입회시킨 상태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김씨가 무슨 내용을 진술했는지, 답변 태도가 성실한지, 누가 김씨를 신문하고 있는지, 참고인으로 누구를 불렀는지 등은 전혀 밝힐 수 없다"며 수사 내용과 방식에 대해 함구하는 등 보안 유지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김홍일 3차장검사도 이날 `김씨가 자료를 얼마나 가져왔고, 무슨 내용이냐'는 질문에 "수사가 끝날 때까지 절대 말할 수 없다"고 했고, 쇄도하는 다른 질문에도 "현재 말할 수 있는 것은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 뿐"이라고 일축했다.

한편 김씨의 체포영장이 미국 로스앤젤레스 현지에서 집행돼 13시간의 비행시간 등이 체포시한에 포함되는 점을 감안하면 18일 오전 5시께까지 검찰이 구속영장 청구를 위해 강도 높은 밤샘조사를 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16일 밤 3시간 가량의 조사에 이어 17일도 오전 10시를 넘어 조사가 시작되는 등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휴일인 18일 법원의 영장실질심사를 거쳐 구속 여부를 가리려면 17일 밤늦게 영장을 넣어야 하기 때문에 실제 조사 시간은 휴식ㆍ식사 시간을 합쳐도 48시간 가운데 17시간 가량에 불과한 셈.
따라서 검찰이 김씨를 기소중지할 때 적용했던 증권거래법 위반, 횡령,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를 뒷받침할 증거를 상당부분 미리 확보해놓는 등 김씨 구속을 자신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김 차장검사도 "일단 범죄인 인도청구서에 기재된 혐의를 위주로 조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사팀은 그러면서도 전날 조사를 끝낸 뒤에도 김씨가 진술한 내용을 분석하고 그가 미국에서 가져오거나 한나라당 경선후보 검증위원회 조사단 등이 제출한 BBK 관련 자료를 검토하면서 일부 밤샘작업도 한 것으로 전해져 김씨 구속 이후의 조사 내용에도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강의영 차대운 기자 keyke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