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대선을 64일 앞두고 범여권이 후보 단일화 국면으로 발걸음을 내디디고 있다.

대선후보 등록일은 내달 25∼26일. 앞으로 한 달여 동안 한나라당 이명박(李明博) 후보의 독주체제에 맞설 대항마로서 민심의 낙점을 받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鄭東泳) 후보와 민주당 이인제(李仁濟) 후보, `창조한국당'(가칭) 창당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문국현(文國現) 후보 등 3자가 범여권 단일화의 중심축이며, 민주노동당 권영길(權永吉) 후보 역시 정책연합의 대상에 포함돼있다.

이들은 이제 막 후보선출 절차를 마쳤거나 창당작업을 진행중이어서 단일화에 대한 카드를 꺼내 보이지 않고 있으나, 대선까지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아 조만간 자신들의 카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을 것으로 보인다.

범여권 후보단일화는 이명박 후보와 1대1 대결 구도를 형성하기 위한 필수코스로 인식되고 있지만, 성사 가능성은 여전히 안갯속에 가려져 있다.

단일화 성사 여부와 효과는 그 시기와 방법, 범위, 지지율 추이, 그리고 범여권의 양대 주주인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의 의중 등의 변수들이 어떻게 복합적으로 작용하느냐에 따라 판가름날 전망이다.

◇단일화 시기 =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의 후보 확정과 동시에 시작될 것으로 보였던 단일화 논의는 일단 속도 조절에 들어간 분위기이다.

정동영 후보는 경선 기간에는 "빠른 시일내에 대통합을 완성시키겠다"고 공언했지만, 후보로 확정된 후에는 당 내부의 화학적 결합과 개인 경쟁력을 높이는 데 주력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정 후보 캠프 전략기획위원장인 민병두 의원은 16일 불교방송 `조순용의 아침저널'에 출연, "지금은 경선에서 뽑힌 후보의 경쟁력을 최대화, 최고화 하는 것이 우선 목표"라면서 "단일화 문제는 정치적 접근보다는 국민의 요구가 선행돼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선 지켜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인제 후보 역시 민주당 후보로서 자신을 국민에게 알릴 충분한 홍보기회를 가진 뒤 11월 중순께 단일화하는 시간표를 그리고 있다.

내달 4일 창당대회를 앞두고 있는 문국현 후보는 15일 논평을 통해 "후보단일화에 대한 모든 논의는 (가칭)창조한국당의 창당 및 공식적 후보선출 절차 이후에 검토할 것"임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처럼 세 후보가 당분간 독자행보를 통해 경쟁력을 키우는 방향을 택함에 따라 10월 말이 지난 후에야 본격적인 협상 테이블이 마련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대선후보 등록 이전까지는 단일화가 완료돼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어 11월 하순을 넘기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세 후보 진영이 즉각적인 단일화 논의보다는 개별 경쟁력 확대쪽을 택한 것은 샅바싸움의 성격이 짙다.

동시에 현 시점에서 이명박 후보와의 지지율 격차가 워낙 크기 때문에 각자의 파이를 어느 정도 키운 뒤에 단일화해야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전략적 계산도 깔려있다.

◇세력통합이냐 선거연합이냐 = 단일화의 형태를 놓고 후보뿐만 아니라 세력까지 통합해야 한다는 주장과 독자세력을 유지한 채 후보만 단일화하는 선거연합의 형태로 가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대통합민주신당은 세력통합을 선호한다.

정동영 후보는 경선중에도 이 문제를 언급할 때 `단일화'가 아니라 `대통합'이라는 용어를 썼다.

반대로 민주당은 정당간 세력통합은 대선까지 남은 시간이 얼마 없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시나리오이며 후보만 단일화해서 대선에 임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에 비해 문국현 후보측은 `정치연합'이라는 포괄적인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상황에 따라 가변적인 태도를 취할 것임을 시사했다.

단일화 방법에 대한 입장 차이의 이면에는 내년 4월 18대 총선의 공천 문제가 깔려있다.

신당이 `세력통합'을 주장하는 것은 총선때 수도권과 호남에서 민주당이라는 부담스러운 경쟁상대가 등장하는 상황을 사전에 정리하고자 하는 의도가 내포돼 있다는 게 민주당쪽의 시각이다.

또한 민주당이 후보 단일화만을 고수하는 배경에는 뿌리깊은 반노(反盧) 정서로 인해 범여권의 대선 승리 가능성이 여전히 낮은 상황에서 대선에 패배하는 상황까지 고려해 독자세력을 유지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판단이 깔려있다.

문국현 후보측이 `정치연합'이라는 모호한 표현을 사용한 것은 객관적으로 세력이 약한 상태에서 후보의 잠재적인 본선 경쟁력만을 무기로 단일화에 나서야 하는 처지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문 후보측은 집권세력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덩치를 키워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당 의원 대거 영입에 나서면 차별성이 사라진다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이처럼 세 후보 진영이 서로 다른 처지와 이해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결국 단일화 형태를 놓고 힘겨루기를 계속하다가 시간에 쫓겨 후보만 단일화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단일화 방법으로는 여론조사에 의한 단일화가 거의 유일한 방식이다.

이미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가 여론조사를 통해 이뤄진 선례가 있는데다 정당법상 서로 다른 정당에 속한 유권자들을 같은 틀내에서 경선투표를 하게 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지지율 추이 = 범여권 후보들의 지지율 추이는 단일화의 시기와 방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중대 변수다.


신당과 민주당 후보가 확정됨에 따라 금주부터 앞다퉈 발표될 여론조사에서 정동영 후보가 `팡파르 효과'를 등에 업고 20%대 이상으로 급상승하게 되고, 이인제 문국현 등 여타 후보들의 지지율이 답보상태를 보이게 되면 단일화 문제는 의외로 싱겁게 끝날 수도 있다.


반대로 세 후보의 지지율이 동반상승하면서 뚜렷한 우열이 나타나지 않은 채 대(對)이명박 경쟁력에서 패배가 확실시되는 것으로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다면 결국 단일화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2002년 노무현-정몽준 후보가 여론조사에 의한 단일화에 합의할 수 있었던 것은 양자가 오차범위내에서 엇비슷한 지지율을 보였기 문이다.


이인제 후보는 이날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지지율과 단일화의 함수관계에 관해 "2002년에는 지지기반이 달라서 굳이 여론조사가 필요했는지 모르지만 이번에는 여론조사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으로 국민이 몰아줄 것이고, 11월 중순에는 대세가 형성될 것"이라며 "마무리는 협상을 통해 하겠지만, 국민의 힘과 선택이 우선하고 개혁세력이 거기에 복종하는 형태로 단일후보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단일화 범위 = 정동영-이인제-문국현 3자 외에 단일화 논의의 범주속에 거론되는 정치세력은 민주노동당이다.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에 실망한 범여권 지지세력의 일부가 민노당을 지지하고 있는 등 지지층이 겹치는 현실때문이다.


범여권이 후보단일화를 추진하면서 동시에 민노당을 상대로 연정을 제의함으로써 범개혁진영의 득표를 최대치로 끌어올리려는 시도가 점차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5일 정동영 후보측 노웅래 대변인은 라디오에 출연, 이인제 문국현 후보와의 후보단일화를 추진할 것임을 밝히면서 "민노당 권영길 후보도 정책적인 연대는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범 반(反)한나라당 연대'를 거론했다. 권 후보측 박용진 대변인은 "넓은 의미에서 함께 하겠다는 뜻은 고맙고 좋은 일"이라며 긍정적인 반응과 함께 가치와 내용 중심의 정치연대를 강조했다.


이에 문국현 후보측은 논평을 통해 "민노당이 `가치중심 연합'을 거론하며 개방적 입장을 밝힌 것에 주목한다"며 "향후 권영길 후보를 포함한 대한민국 재창조에 공감하는 모든 정치세력과의 대화의 장이 열려 있음을 밝힌다"고 환영했다.


이밖에 독자창당에 나선 이수성(李壽成) 전 총리, 정근모(鄭根謨) 전 과기부장관, 장성민(張誠珉) 전 의원 등도 넓게 봐서 단일화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으나, 대선 국면에서 유의미한 변수가 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특히 이수성 전 총리의 경우 한나라당 대선후보 출마 이후 가시적인 정치노선의 변화가 없었다는 점에서 범여권의 범주에 넣는 것은 무리라는 시각도 있다.


◇盧.DJ 의중 =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후보단일화 국면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는 문제 매우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신당의 후보경선 국면에서 노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지만, 범여권 지지층내에서 확고한 기반을 가진 두 전현직 대통령은 여전히 현실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기때문이다.


정동영 후보가 수락연설에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맥을 잇는 3기 민주통합정부를 열어가겠다"며 자신이 두 정부의 계승자임을 주장하면서 곧바로 전화를 걸어 인사한 것은 노.김 양자의 도움없이 단일화 국면은 물론 본선을 헤쳐나가기 쉽지 않다는 현실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현 시점에서 노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이 단일화 국면에서 특정 후보에게 노골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 같지는 않다.


노 대통령은 정 후보로부터 전화를 받고 "당선을 축하한다"며 "앞으로 정 후보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을 잘 껴안고 가기 바란다"며 `뼈있는 덕담'을 건넸다. 김 전 대통령측 최경환 비서관은 "김 전 대통령께서는 범여권 후보 문제에 대해선 국민여론을 살펴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당분간 신당의 내부갈등 수습 과정과 단일화에 대한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는 스탠스를 취할 것임을 짐작케하는 대목이다.

(서울연합뉴스) 맹찬형 기자 mangel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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