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인 23명을 억류 중인 납치 세력이 "한국 정부와 직접 대화하고 싶다"고 밝혀 구명 협상이 중대 기로를 맞았다.

정부는 '테러리스트와 직접 대화하지 않겠다'는 원칙이 있지만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며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다.

문제는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정부와의 협상이 잘 안되고 있다는 전제에서 직접 대화를 요구한 점이다.

독일 등 다른 파병국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대화에 나서기도 쉽지 않지만 나선다해도 부담이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특히 국제평화유지군의 주력인 독일은 이날도 협상을 거부하고 추가 파병까지 시사,우리 정부를 압박하는 모양새가 됐다.

◆"한국과 직접 대화하겠다"

정부는 전날 부족 원로들을 내세워 납치 세력과 협상 채널을 구축한 데 이어 이날 본격적으로 요구 조건 교환을 시작했다.

탈레반 대변인을 자처한 유수프 아마디는 이날 "원로들과 탈레반 간 협상에서 진전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후 한국 정부와 직접 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아프가니스탄 정부와의 협상이 잘 안되는 만큼 우리 정부와 담판을 짓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정부는 고심 중이다.

정부는 현재 아프간 정부,한국 정부 대표단,미국 동맹군으로 구성된 후방 지원단에 합류해 후방에 물러나있다.

정부가 전면에 나설 경우 '테러리스트와 협상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깨지고 납치 세력의 기대치가 높아진다는 판단 때문이다.

협상 전면에는 카르바그 지역 부족 원로들이 나서있다.

정부 당국자는 "아프간 중앙 및 지방 정부,동맹국(미국)과 협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로선 협상에 나설 수도 안나설 수도 없는 어려운 상황이다.

◆방계 탈레반 조직인 듯

카르바그 지역 부족 원로들이 전면에 나선 이유는 납치 세력이 2001년까지 아프간에서 집권한 중앙 탈레반이 아니라 이 지역 방계 조직인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요구 조건이 전달되는 경로가 단일화돼있지 않고,내용도 조금씩 다르다는 점에서 그렇다.

납치 세력은 한국군 철수에서 23명의 수감자 맞교환으로 요구 조건을 바꿨다.

그것도 탈레반 지도자 석방이 아니라 카르바흐지역 수감자 석방이다.

최근에는 군사 작전 중지 등 새로운 요구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탈레반의 근거지는 남부 칸다하르인데 반해 납치 세력이 한국인들을 붙잡아 억류하고 있는 곳은 칸다하르에서 300km 이상 떨어진 가즈니주 카르바흐인 것도 이상하다.

정부 당국자는 "납치 세력이 탈레반 중앙 조직과 연락 체계는 갖추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의사 결정 체계는 잘 안돼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독일 추가파병 시사

정부 당국자는 납치 세력의 요구조건과 관련,"다양한 경로로 다양한 요구가 입수되고 있다.

구체화되는 단계"라고 말했다.

중앙 탈레반과 '카르바그 탈레반'의 요구 조건이 다른 것으로 보인다.

중앙에선 보다 정치적인 요구를,납치 세력은 실질적인 요구조건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어 어떻게 조율하느냐가 관건이다.

독일 등 다른 파병국들과의 외교적 변수도 존재한다.

국제평화유지군의 주력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날도 탈레반과의 협상을 거부하고 추가 파병까지 시사했다.

메르켈 총리는 ARD TV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협박에 굴복하지 않는다.

추가 파병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전날 피랍 독일인 2명 중 1명의 시체가 총탄이 박힌 채 발견됐다.

탈레반 대변인을 자처한 아마디는 "한국인들은 건강하고 양호한(good health and fine) 상태"라고 말했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