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구소련시절 대북 원유 지원에 활용했던 정유시설에 대한 개보수에 적극 나서는 것은 소련 해체 후 냉각된 양국 관계를 경제협력을 통해 복원시키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북한 역시 소련의 원유 지원이 끊긴 후 에너지난과 대중국 종속이 심화됐기 때문에 경제·정치적 자립을 위해 '승리화학공장 재가동'에 많은 상징적 의미를 부여해왔다.

◆러,원유공급·부채탕감 의지

서울의 외교소식통은 "러시아가 지난 23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북·러 경제협력위원회에 국영가스회사 가즈프롬 관계자들을 참석시켜 승리화학공장의 개보수에 대해 적극적인 의향을 밝혔다"고 28일 전했다.

러시아는 이 자리에서 북한에 88억달러에 달하는 부채를 탕감해주기로 결정,양국 간 경제협력의 최대 장애물도 제거했다.

북측 대표인 림경만 무역상은 채무를 상환할 능력이 전혀 없음을 '공개적이고 솔직하게'밝혔으며 콘스탄틴 풀리코프스키 러시아 측 대표는 "(푸틴)대통령의 결정이 남았다"고 말한 것으로 이타르타스통신이 보도했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채무 전액 탕감을 요구해 북·러 경협위가 7년간 열리지 못했다"며 "러시아가 경협위를 재개한 것 자체가 북한 요구를 수용할 뜻을 밝힌 것"이라고 말했다.

◆철도 개보수도 본격화

러시아와 북한이 원유 수송용으로 시작한 핫산~나진 구간 철도 개보수 작업도 본격화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지난해 10월 착공했으나 중간업자들이 끼어있어 지지부진했고 올 들어 러시아철도공사가 총책을 접수해 본격화되는 양상"이라고 전했다.

철도 보수가 끝나고 정유시설까지 갖춰지면 러시아는 대북 원유 공급을 16년 만에 재개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연간 원유 수요 350만t에 맞춰 1979년 구소련 지원으로 함북 나진·선봉시에 정유시설인 승리화학공장(처리능력 200만t)을,이듬해 중국 지원으로 평북 피현에 봉화화학공장(150만t)을 건설했다.

현재 봉화만 연간 50만t의 중국산 원유를 들여오는 데 쓰이고 승리는 1991년 소련 붕괴 후 러시아가 원유공급을 무상 지원에서 유상 수출로 바꾸면서 가동이 중단됐다.

◆무상지원 가능성 희박

그러나 구소련식 무상 지원이 재개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민·관의 공통된 견해다.

정부 당국자는 "러시아가 북한에 정유 시설을 두려는 것은 시베리아 개발과 중국 견제라는 경제·정치적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며 "무상공급할 가능성은 거의 없고 원유를 준다면 정유 대가일 것"이라고 말했다.

극동에 있는 러시아의 정유시설 두 곳 중 하바로프스크 시설에서 현재 증설 작업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내수용이라는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고재남 외교안보연구원 러시아지역 박사는 "러시아는 중국이 나진·선봉지구에서 도로와 항구를 장기임차한 후 경쟁 의식을 느끼고 있으며 특히 북한의 개방이 본격화되면 후발주자가 될 것을 걱정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오일머니가 풍부하게 축적된 김에 북한에 입지를 확보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