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방문 나흘째를 맞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일행을 태운 유엔 차량 20여대가 25일(현지시간) 예루살렘을 출발해 60번 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달려간 지 불과 10여분.'베이트 엘'이란 초소를 지나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인 서안지구(웨스트 뱅크)에 들어섰다.

산자락을 빼곡히 메운 집이며 듬성듬성한 나무들.미국의 도시를 연상케 하는 예루살렘과는 전혀 딴 동네다.

중무장한 군인들을 태운 장갑차가 앞뒤로 호위하는 가운데 반 총장 일행이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일행이 지나는 모든 길은 폐쇄됐다.

얼마 전 가자지구에서 충돌이 있었던 터라 긴장감은 더욱 팽팽했다.

10여분 만에 도착한 라말라 지역의 무카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정부 청사라고 하기엔 초라한 그곳으로 들어가자 육중한 문이 이내 닫혔다.

의장대를 사열한 반 총장은 마무드 아바스 정부수반과 회담에 들어갔다.

회담을 마친 반 총장은 "아바스 수반의 대화를 통한 평화 정착 노력을 지지한다"며 "아바스 수반이 대화의 준비가 돼 있다는 걸 확신한다"고 말했다.

반 총장 일행은 곧바로 인근 식당으로 옮겨 팔레스타인의 아잠 알마드 부수상 등 각료들과 오찬 회동을 가졌다.

그곳에서도 삼엄한 경비가 펼쳐졌지만 사람 사는 곳이었다.

코카콜라 간판도 보이고 슈퍼마켓도 보였다.

엄청난 경비를 뚫고 껌 등을 팔러온 아이들과 경비 병력만 없었다면 영락없는 우리 60년대 시골마을 모습이다.

팔레스타인 출신이라는 한 유엔 직원이 "작년 여름 팔레스타인 민간인 두 명이 바로 10m 앞에서 살해당했다"고 넌지시 일러주지만 않았다면 긴장의 끈을 놓을 뻔했다.

반 총장 일행이 팔레스타인 거주 지역인 서안지구를 빠져나와 예루살렘으로 향하다 중간에 멈췄다.

산자락 사이를 거대한 장벽이 틀어막고 있었다.

장벽 안쪽은 팔레스타인 거주 지역이고 바깥쪽은 이스라엘인 정착촌이다.

일행이 멈춰 선 도로도 서안지구에 있었지만 장벽에 갇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용하지 못한다.

서안지구엔 이런 정착촌이 161개나 된다.

반 총장 일행은 이에 앞서 예수 탄생지인 베들레헴에 있는 아이다 난민촌을 방문했다.

이들은 서부예루살렘 등에 거주하다가 추방된 팔레스타인인들의 집단 거주지역.사방이 장벽으로 쌓인 곳에서 4700명이 살고 있다.

이들은 '우리를 고향으로 돌려보내 달라'는 등의 플래카드를 들고 반 총장을 맞았다.

그곳에 있는 학교를 방문한 반 총장은 학생들 앞에서 가슴 찡한 목소리로 "여러분의 꿈이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의 지원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민족과 종교 그리고 이념이 만들어 놓은 인의 장벽.담장 하나 사이로 빈곤율이 67%에 이르는 팔레스타인과 부자나라 이스라엘이 공존한다.

예루살렘=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