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대표 '날씨 환담'..따뜻한 환영

제20차 남북장관급 회담 수석대표인 이재정 통일부 장관을 포함한 남측 대표단 52명이 27일 오후 4시10분 아시아나 항공편으로 서해 직항로를 통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는 북측 차석대표인 주동찬 민족경제협력협의회 부위원장과 맹경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부국장 등 대표 4명이 나와 남측 대표단을 영접했다.

오후 5시 숙소인 고려호텔에 도착한 이 수석대표는 북측 대표단장인 권호웅 내각 책임참사의 영접을 받은 뒤 환담에서 "2.13 베이징 6자회담에서 균등과 형평원칙에 의해 마음 터놓고 좋은 합의를 했다"고 의미를 부여한 뒤 "평양이 맑고 깨끗하고 좋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권호웅 대표단장은 "겨울 추위는 살이 시리지만 봄 추위는 뼈가 시리다는 말이 있다. 건강을 조심하시라"고 말했다.

권 단장은 지난해 7월 굳은 표정으로 회담에 임하던 모습과 대조적으로 시종 자신감 있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남측 대표단은 오후 7시 박봉주 내각 총리 주최로 양각도 국제호텔에서 열린 만찬에 참석했다. 박 총리는 내부 사정으로 지난해 9월 이후 공식석상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었다.

남북은 28일 오전 10시 대표단 전체회의를 시작으로 공식 회담일정에 돌입한다.

="평양 오신 것 환영합니다"=

0...북측은 남측 대표단을 평양 순안공항 활주로까지 나와 따뜻이 맞았다. 북측 차석대표인 주동찬 민경협 부의장은 이 장관과 반갑게 악수하며 "평양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말했고 이 장관은 "반갑습니다. 개성에서 만나고 또 만났네요"라고 화답했다.

남측 대표단은 화창한 날씨 속에 기념촬영을 마친 뒤 북측이 제공한 차편으로 곧장 숙소인 고려호텔로 향했다. 북측 단장인 권 내각 참사는 고려호텔 정문에서 이 장관을 맞았다.

권 단장은 "오래간만에 봅니다"라고 인사를 건네고 반갑게 악수했다. 이 장관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던 2005년 6월 서울에서 열린 제15차 장관급회담 환영만찬과 같은 해 8.15행사 오찬에서 권 단장을 만났었다.

=평양 봄기운 완연, 경제구호 많아=

0...평양은 2월 말이지만 봄 기운이 완연했다. 이날 낮 최고기온이 12도까지 올라 평양 곳곳에는 봄 햇살을 즐기는 시민들이 많았다.

특히 김일성광장과 4.25광장 등지에는 단체체조를 하는 학생들이 가득했다. 북측 안내원은 이를 가리켜 "아리랑 공연을 준비하는 것이다. 4월15일 김일성 주석 생일에 즈음해 공연을 할 수 있을 것이고 잠시 쉬었다가 8.15 때도 할 것"이라고 전했다.

또 평양 중심가에는 공중전화 앞에 길게 줄을 서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북측 관계자는 "공중전화는 1원을 넣으면 3분 간 통화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시내 곳곳에는 '올해 경제강국 건설에서 일대 전환을 이루자'는 등 경제를 강조하는 구호들이 많이 보였다. 핵실험 관련 구호는 보이지 않았다.

= 李통일 기내환담.."접인춘풍" =

0...이 장관은 이날 이륙 후 기내에서 "어떻게 (북측과) 대화를 풀어나가려 하나"는 질문에 "얼마만큼 진정성을 담아 얘기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접인춘풍(接人春風)이라고 남을 대할 때 봄바람처럼 대하라는 것이다. 마음을 녹이고 따뜻하게 활력이 생겨 새 봄을 기약하는 것이다"라고 답했다.

이 장관은 "7개월 만에 만나니까 우선 지나간 것보다는 미래지향적이고 창의적인 큰 틀에서 합의를 만들고 그 합의가 앞날을 예견할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남북 간 회담이 전략적 사고 가지고는 못 푼다"고 말했다.

'2.13합의 조속한 이행'을 공동보도문에 넣는 문제에 대해서는 "논의를 해봐야 한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또 북측 대표인 권 단장과 관련, "세대가 다르지. 나는 해방과 6.25를 경험했지만 권 단장은 못했다. 구세대와 신세대 간 잘 조화되면 좋은 결과를 만들지 않겠나"고 기대했다.

이 장관은 이어 북측이 정치.군사.경제적 '3대장벽'을 들고 나올 가능성과 관련해서는 "저쪽이 당연히 제기할 수 있는 문제고, 제기하리라 본다"면서 "큰 틀에서 남북관계가 발전하면 그때 가서 논의할 수 있는 문제"라고 덧붙였다.

= 李통일 "술 못 마신다고 연락관 통해 전달" =

0...이 장관은 이번 회담에 앞서 남북 채널을 통해 "술을 못 마신다"는 내용의 전갈을 북측에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이 장관은 이날 기내에서 기자들과 만나 환담하는 자리에서 `술을 못 마시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연락관을 통해 술을 못 마신다고 전달했다"고 소개하고 "내 몸이 술을 안 받아요"라고 말했다.
이 장관이 사전에 이런 내용을 전한 것은 장관급회담 일정에 잡혀 있는 환영 및 환송만찬 등에서 관행적으로 서로 술을 권해 온 분위기를 `걱정'한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 장관은 체질적으로 술이 받지 않아 평소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다.

= 北단장 시종 여유로운 모습 =

0...권 단장은 지난해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직후 부산에서 열렸던 제19차 회담 때보다 훨씬 자신감에 차 있는 모습이었다.

제19차 회담 때는 남측이 쌀.비료 지원을 유보하겠다고 사전에 선을 그어서인지 회담 기간 내내 굳은 얼굴이었지만 이번에는 남측 대표단과 환담 내내 미소를 잃지 않고 대화를 리드하는 모습이었다.

이번 회담에서는 남측의 인도적 지원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관측도 나왔다.

아울러 권 단장이 2004년 제14차 회담부터 단장을 맡아온 베테랑이라는 점도 여유로운 모습의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 장관은 권 단장이 상대하는 네 번째 '회담 카운터파트'다.

(평양=공동취재단) 정준영 함보현 기자 = prince@yna.co.kr hyuntest@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