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여에 걸친 여야간 줄다리기 끝에 국회가 27일 새해 예산안을 처리하면서 내년 나라살림의 대체적인 윤곽이 그려졌다.

총 163조3천500억원 규모(일반회계+특별회계)의 새해 예산이 심의, 확정되는 과정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지방을 중심으로 도로, 항만, 철도 등 사회간접자본(SOC) 관련 예산이 큰 폭으로 늘어났다는 점이다.

이는 경기진작과 지방균형발전을 위한 배려 차원으로 평가할 수 있으나 이 보다는 내년 연말 대선을 염두에 둔 이른바 '선심성 예산'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에 비해 국방, 복지, 교육 등 안보와 국민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예산은 모두 '칼질'을 당해 여야가 당초 내세운 '민생을 최우선으로 하는 예산심사'라는 원칙은 헛구호가 되고 말았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최근 북핵사태로 인해 북한 관련 예산이 야당의 '태클'로 대폭 삭감된 것도 이번 예산심사에서 주목되는 대목이다.

◇지역민원 챙기기 = 이번 예산심사에서 당초 정부 제출안 보다 증액된 항목의 상당부분은 도로.철도 건설 관련 예산으로, 건설교통부 사업만 해도 무려 92건, 2천970억원 규모에 달했다.

무안-광주 고속도로(50억원), 평창-정선2국도(20억원), 삼랑진-진주 복선전철(30억원) 등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올린 도로.철도 건설예산이 지역구 의원들의 '활약'으로 수십억원씩 늘어난 것.
또 부산항 건설(200억원), 보령신항 개발(50억원) 등 지역항 건설을 비롯한 각종 지역사업 예산 증액도 유난히 많아 지나친 '민원성 심사'라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도로.철도.항만 건설사업의 경우 이른바 '정치권 쌈짓돈'으로 불리는 교통시설특별회계(교특회계) 관련 예산이어서 여야가 올해도 '제몫 챙기기'에 급급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반면 지난해 예결위 심의과정에서 대폭 증액됐던 사회복지 예산은 올해 오히려 1천5억원 순삭감(2천116억원 감액, 1천111억원 증액)됐고, 교육예산도 2천116억원이 삭감된데 비해 증액은 409억원에 불과해 1천707억원 순삭감을 기록했다.

과거 예산심의의 '사각지대'였던 국방예산도 단거리지대공유도무기(191억원), 한국형기동헬기(174억원), 차기보병전투장갑차(100억원) 등 방위사업청 예산을 비롯해 이라크 해외파병(784억원), 용산미군기지 이전사업(831억원) 등의 예산이 최고 수백억원씩 잘려나갔다.

◇북핵 여파 대북지원 예산 타격 = 올들어 북한 미사일 시험발사와 핵실험 강행 등으로 인해 대북지원 예산이 한나라당의 '태클'에 걸렸다.

우선 남북협력기금에 대한 일반회계 출연액이 여야간 막판 기싸움을 벌인 끝에 6천500억원에서 5천억원으로 줄어들어 내년 대북사업의 위축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됐다.

또 교육인적자원부의 북한연수경비 예산, 정보통신부의 남북 IT교육협력촉진 예산, 문화관광부의 관광진흥기금 중 남북관광교류확대기반조성 사업 예산 등도 삭감을 피하지 못했다.

특히 남북협력기금의 경우 '집행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기금운용계획을 변경할 경우 국회 동의를 얻도록 하고 매분기 지출사항을 국회에 보고토록 한다'는 예산심사 부대조건까지 붙었다.

◇국회 관련 예산 챙기기 = 국회의원의 활동 및 국회시설 관련 예산은 상당폭 늘어나 '내 식구 챙기기'라는 지적이 나왔다.

89명의 인력증원 예산으로 인건비가 36억원 늘어난 것을 비롯해 청사관리 및 노후시설 보완(23억원), 제2의원회관 건립(15억원), 의정활동 지원(3억원) 등의 항목에서 정부안보다 증액 처리됐다.

반면 국정홍보처의 국가주요시책 홍보(5억원), 대통령비서실의 인건비(12억원) 및 국정평가, 홍보(1억원) 관련 예산 등은 예산심사 과정을 거치면서 정부안보다 줄어들었다.

◇'무법(無法)' 예산 1천600억 삭감 = 이번 예산심의에서는 법적인 근거가 마련되지 않은 예산이 대폭 삭감을 당했다.

행자부의 일제강제동원피해자 지원(1천506억원)은 `일제 강점하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법률'이, 교육부의 법학전문대학원 제도 도입 및 운영(9억원)은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법'이 처리되지 못해 각각 전액 삭감됐다.

재판업무운영경비 지원(67억원), 소득파악인프라 구축(72억원) 등도 관련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 일부 삭감된 항목이다.

한편 최근 한류 붐이 주춤한 가운데 문광부의 한류사업 증진 예산 11억원이 전액 삭감되고 전통예술 한류확산 지원 예산도 당초 20억원에서 15억원으로 줄어든 것도 눈에 띈다.

◇마라톤 예산심의 진기록 속출 = 새해 예산안은 지난 1일 국회 예결특위가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조정소위'의 첫 회의를 열고 항목별 계수조정을 시작한 지 26일이 지난 27일 새벽 4시께 처리됐다.

한달 가까이 진행된 예산심의 과정에서 소위 위원들은 국회 회의실, 의원회관, 여의도 모 호텔 등에서 밤낮없이 계수조정을 벌였으며, 사학법 재개정을 둘러싼 기 싸움과 막판 난항에도 불구하고 여야 합의로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예년에 통상 삭감심사 이틀, 증액심사 이틀, 조정심사 이틀 등 일주일만에 계수조정이 끝났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소한 시간적으로는 충분한 심사가 이뤄진 셈이다.

특히 새벽 4시에 예산안이 본회의를 통과한 것도 과거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고 예산심사 부대조건이 50개나 붙은 것도 사상 최고 기록이라는 것이 예결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밖에 새해 예산안(일반회계+특별회계)의 삭감폭(1조3천400억원)도 국회 예산안 심사 이래 최대 규모다.

(서울연합뉴스) 이승관 기자 huma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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