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방코델타아시아(BDA)에 동결된 돈을 되찾는 데 올인하면서 한반도 비핵화가 BDA에 볼모로 잡혔다.

두 문제를 분리 대응한다는 원칙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6자회담장에서 계좌 동결 해제만 되풀이 요구했다.

크리스토퍼 힐 미국 6자회담 수석대표는 21일 북한과 3일째 양자협의 종료 후 "북한이 BDA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6자회담 의제를 다루지 말라는 엄격한 지시를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북(北) "BDA 해결돼야 핵동결"

북한은 "BDA 문제에 관한 미국의 태도가 미국 적대시 정책의 가늠자"라는 입장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영변 원자로 가동을 중단하라는 미국의 요구에 대해 "우리도 원하는 바"라고 주장했으나 그 전에 미국이 BDA 문제에 대해 이치에 맞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고집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니얼 글레이저 미국 재무부 부차관보는 전날까지 오광철 북한 조선무역총재와 이틀간의 협의를 마친 후 이날 미국으로 돌아갔다.

다음 달 뉴욕에서 회의를 속개하자고 얘기한 것 외엔 공개된 성과가 없다.

하지만 BDA 문제가 사실상 6자회담의 선결 조건이 됐다는 점에서 해결 방안에 대한 모종의 암시가 있었을 것이라는 게 회담장 주변의 관측이다.

BDA를 돈세탁 우려 은행으로 지정한 쪽은 미국이지만 계좌를 동결한 것은 마카오 정부라는 사실에 근거,북한에 마카오 정부와 직접 접촉할 것을 제안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미국이 수사 종료 후 계좌 처리를 중국의 재량에 맡기기로 암묵적 합의가 되면 북한이 돈을 되찾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미(美) "북은 대화하는 척도 안해"

북·미 6자회담 대표단은 이날 여러 차례 따로 만났다.

영변 원자로와 방사화학연구소의 연료봉 재처리시설 등 모든 핵시설 가동을 중단하고 국제적인 모니터링을 수용하는 문제를 놓고 집중 협의를 벌였다.

미국측은 북한이 일단 핵시설의 가동을 중단하면 '체제 전복을 시도하지 않겠다'는 식의 안전을 보장해주고 북한이 더 나아가 핵 프로그램을 전면 신고할 경우 경제 지원 등 다각적인 보상도 받을 것이라고 설득한 것으로 전해졌다.

힐 대표는 협의 후 "우리는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은 비핵화를 하는 척은 물론이고 대화하는 척할 준비도 돼 있지 않았다"며 좌절감을 토로했다.

협상을 위해 22일 하루가 더 남아 있다.

관건은 북한이 BDA에 관한 미국과의 협의를 "진전이 있었다"고 평가할 것인가 여부다.

그래야만 북·미가 핵동결에 따른 '값'을 놓고 본격적인 흥정을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회담에서 구체적인 합의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벌써부터 "1년 넘게 중단됐던 회담의 맥을 되살린 것으로 의미가 있고 향후 회담 일정을 잡을 수 있다면 성공한 회담"이라며 기대치를 낮추는 분위기다.

베이징=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