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 = 김영규 한경 편집 부국장 ]

요즘 우리사회가 극도로 어수선해지고 있다.

토론장에서 이해 당사자 간 멱살잡이는 다반사이고 시위현장에 화염병과 쇠파이프도 다시 등장했다.

교육현장도 공교육이 붕괴되면서 교사와 학부모 간 갈등만 심화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사회 곳곳에서는 '네탓'공방과 함께 불법 불감증이 심해지는 형국이다.

과거에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날 무렵에는 항상 어수선했지만 이번에는 혼돈의 상태가 더 빨리,그리고 더 거친 양상을 띠고 있어 한국사회가 아노미상태로 빠져들고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한국경제신문은 지난 7일 본사 회의실에서 김우준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교수, 이석연 변호사,조준모 성균관대 교수,허찬국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을 초청,긴급 좌담회를 갖고 한국사회의 진단과 혼돈을 벗어날 수 있는 해법을 모색해 보았다.

참석자들은 리더십 부재를 아노미현상의 첫번째 이유로 꼽았으며,내년에는 그 같은 혼돈이 더욱 심해질 개연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해법을 찾는 과정에서는 한숨 속 걱정만 짙게 깔렸다.

다만 현 정권이 실험정치를 중단하고 헌법중시 풍토를 회복시키는 데 전념하라는 주문이 기조를 이루었다.

[ 좌담회 참석자(가나다순) ]

김우준 연대 동서문제연구원교수(신중도포럼 공동대표)
이석연 변호사(헌법포럼 상임대표)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노동경제학)
허찬국 본부장(한경연 경제연구소)


◇사회=최근 들어 우리 사회가 극심한 가치혼돈을 겪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보혁(保革) 간 이데올르기 간극은 더욱 심화되고 노조의 불법파업이나 묻지마 범죄도 위험수위를 넘어선 듯 합니다.

사회적 아노미현상은 아닌지요.

○이석연 변호사=국가는 나름의 품격을 가져야 하는데 지금 그 품격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역시 대통령의 리더십 상실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말할 수 있죠.여기다 여야 정치인들도 지도력을 상실했고,국가의 기본조직인 정부조직도 제 역할을 못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헌법적 가치인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지요.

문제는 지금의 혼란이 과거의 혼란기와는 다르다는 데 있습니다.

과거에는 주로 외부적요인에 의해 혼란이 발생했고 오히려 국민들이 일체감을 갖고 이를 극복해 냈죠.하지만 지금은 우리사회 내부에서 총체적인 아노미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현 집권세력이 출범부터 헌법적 가치를 경시하고 자신들만이 정의를 독점하고 있다는 독선으로 일관했고,지금도 그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남의 탓으로 돌린 결과임에 틀림없습니다.

○김우준 교수=참여정부는 지역균형 발전이라든가 제왕적 대통령제 탈피 등 좋은 발상을 많이 제시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젠다만 내세웠지 실행력은 크게 떨어졌던 것 또한 사실입니다.

특히 실행과정에서 좌파성향 시민단체의 눈치를 보느라 시장경제의 논리를 무시하는 우를 범했습니다.

대통령 중심제에서는 대통령의 말이 곧 정치고 정책이고 외교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왕적 대통령을 탈피한다며 너무 자연인처럼 행동하다보니 오히려 부자연스런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민주사회에서 이념경쟁은 자연스런 현상이지만 집권당이 진보도 아니고 중도도 아닌,다시 말해 몸은 중도면서 머리는 진보에 가까운 어정쩡한 입장을 취해오면서 가치혼란만 유발해 왔습니다.

특히 이 정부는 사회 이슈를 계층 간의 문제로 가져가는 실수를 범했죠.지지계층 결집이란 표현은 선거에선 모르지만 정책집행에서 국정책임자들이 할 수 있는 얘기는 아닙니다.

○조준모 교수=사회 전반적으로 파행의 원인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으며,노사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노동단체는 자기 이익에 반하면 격렬투쟁에 나서고,경영계는 민주노총을 탓하고,공권력이 투입되면 강경진압이 문제되고,다시 정치권이 개입하고….

문제의 근원을 찾는 게 중요한데 그렇지 못한 풍토가 사회가치의 혼란을 부추기는 것이지요.

정부의 일관된 정책이 필요합니다.

수용할 건 하고 못할 건 못한다고 해야지,괜히 기대심리만 부풀리는 것은 악순환을 증폭시킬 뿐입니다.

◇사회=요즘 법보다 주먹이 앞선다는 말이 다시 등장한 것 같습니다.

계층 간 지나친 이데올로기 간격이 가치혼돈을 부채질한 결과는 아닌지요.

○허찬국 한경연 본부장=과거에는 우파성향의 지식층만 인정을 받았습니다.

왼편을 억눌렀던 측면이 있었지요.

하지만 근래엔 좌파성향의 정치집단과 지식인들의 역할이 커진 게 특징입니다.

새롭게 좌편향 그룹이 득세한 형국이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김대중 정부 때만 해도 이데올로기는 사회의 중심 화두는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소위 중도에서 왼쪽에 있는 그룹의 역할이 커져,지나칠 정도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조 교수=다원주의 사회로 가면 정치적 스펙트럼이 넓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경제학적 시각에서 보면 정치적 사고의 폭과 국가의 경제성과는 상관관계가 상당히 큽니다.

최근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다녀왔는데 정치적 스펙트럼이 넓다 보니 그만큼 의사결정 비용이 많이 들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우리처럼 남의 의견을 존중하는 경험이 미약한 국가의 경우 정치적 스펙트럼이 넓어지면 경제시스템이 상당한 부담을 갖게 됩니다.

그 간극은 감당할 수 있을 정도여야 합니다.

◇사회=경제는 어려워지는데 파업이 일상화되는 등 노사관계가 여간해서 새로운 접점을 찾지 못하는 것도 사회혼란의 큰 이유라고 생각됩니다.

○이 변호사=참여정부 출범 초 두산중공업 파업 시 당시 권기홍 노동장관은 불법파업이라도 목적이 정당하면 들어줘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민주주의는 절차의 정당성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런데 정부가 분배란 목적의 정당성만 강조하다보니 모든 게 흐트러진 것입니다.

동기의 순수성과 도덕성을 앞세워 정책을 펴다 가치의 혼돈을 유발한 것이지요.

성매매금지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식 정책은 누가 못하겠습니까.

이런 개념으로 가다보니 큰 틀의 헌법정신이 흔들리면서 이데올로기 속에 헌법이 매몰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지요.

과거에는 육법에 무법 불법을 더해 팔법,현 정부들어서는 국민정서법과 떼법을 더해 십법이 지배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조 교수=참여정부 들어 역대 노동장관들을 보면 초대인 권기홍 장관은 노동자의 협상력에 힘을 실어주었죠.후임인 김대환 장관은 그 반대로 법과 원칙을 강조했습니다.

지금의 이상수 장관은 법과 원칙을 천명하지만 어느 방향으로 갈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문제는 장관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달라져 혼돈스럽다는 것입니다.

선진국을 보면 일정선 안에서 합법적으로 이뤄지는 파업은 존중됩니다.

하지만 폴리스 라인을 넘어서면 법과 원칙을 엄격히 적용합니다.

그런 원칙없이 정책이 갈짓자형으로 왔다갔다하니 최근 화물연대 파업에 보듯 대못뿌리고 비조합원의 차에 불지르고 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입니다.

○이 변호사=노사관계의 획기적 개선없이 한국의 선진국 진입은 요원합니다.

사용자는 강자며 착취계층이고 노동자는 약자란 온정주의적 접근은 우리 교육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사용자와 노동자를 편가르기식,계급투쟁식 이분법으로 몰고가는 것은 곤란합니다.

◇사회=내년은 대통령선거가 있는 해입니다.

또 외환위기가 발생한 지 10년째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대선정국과 맞물려 지금과 같은 혼란이 계속되면 제2의 외환위기를 겪게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는 실정입니다.

○허 본부장=우리나라의 내년 경제는 북핵과 같은 경제외적 변수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게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외부의 나쁜 충격요인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 같은 돌발사태가 발생하면 대응의 1차적 책임은 정부가 져야 하는데 대응능력이 있는가에 의구심이 듭니다.

별로 크지 않은 외부의 충격에도 내부 체제나 공공질서가 붕괴될 수도 있습니다.

10년 전 외환위기가 발생했을 때도 기아 한보 등 여러 어려운 문제를 누구하나 총대를 메고 수습하지 못했지 않습니까.

그 당시 오죽했으면 당시 IMF총재가 야당 대통령후보를 만났겠습니까.

내년에는 IMF보다 더 불쾌한 불청객이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김 교수=대선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집권여당이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기 위해 무리수를 둘까 걱정입니다.

그 중 하나가 남북정상회담 개최 운운입니다.

대선정국에 북한이 개입하는 것을 용납해선 안 됩니다.

집권여당은 지금 그런 유혹에 빠지기 쉬울 것 같은데 그것은 잘못된 판단일 것입니다.

한나라당의 경우도 대선후보들이 너무 많아 걱정입니다.

후보단일화가 안 되면 우리 사회에 또 다른 짐을 지울 것입니다.

○이 변호사=현 집권세력은 갈 데까지 가 잃을 게 없다는 자포자기 상태에 처해 있어 뭐든지 할 것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대선판을 깰 수도 있습니다.

남북카드와 같은 국면전환용 충격요법을 동원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죠.경제는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현 정권이 정치세력의 이합집산 과정에서,우왕좌왕하다보면 경제는 표류하고 부동산거품은 빠지고,외환위기에 버금가는 위기가 올 수 있습니다.

역사의 계산서는 나중에 발행되며 이자까지 붙여져 다음 세대에 부과된다는 얘기죠.

○조 교수=이전에는 경제사회를 운전하는 기사가 갈짓자로 몰아 걱정이었는데 앞으로는 운전기사가 없는 상태를 걱정해야 할 상황입니다.

이전까지는 정치가 경제를 불안하게 만들었다면 내년에는 경제불안이 사회의 불안을 확대 재생산하는 쪽으로 나아갈지 모릅니다.

◇사회=내년이 더욱 걱정스럽다는게 여러분들의 공통된 시각인것 같습니다.

이 위기를 탈출할 수 있는 해법은 없는 것일까요.

○허 본부장=우선 이 정권은 한·미 FTA를 성공적으로 타결시켜야 합니다.

이 협상은 노대통령이 시작한 일입니다.

이것으로 온 나라가 또 다시 시끄러워지면 설득에 적극 나서야 합니다.

둘째는 깜짝쇼 없이 내년 선거를 무사히 마무리지어주길 바랍니다.

어차피 누적된 문제는 내년 한 해 동안 해결하기는 불가능 합니다.

○김 교수=정부와 시장,그리고 시민사회가 수평적 협력관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정부가 좌편향된 시민사회에 의존하는 것은 안 됩니다.

정부는 일자리를 만들고 기업은 어렵지만 투자에 적극 나서야 합니다.

○이 변호사=대한민국 국적자가 이념과 가치관,정책지향성을 넘어 같이 합의하는 기본텍스트는 헌법입니다.

헌법적 가치 아래서는 좌우가 이념대립을 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 자유시장경제 법치주의 기본권 존중을 침해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열심히 자기 능력과 자질을 발휘해 부자가 되는 꿈을 이룰 수있는 사회풍토를 확립해야 합니다.

국민들도 정치인들의 선동과 정파 간 정략을 꿰뚫어 보고,올바른 역사의 방향으로 이끌어가는지 냉철히 판단해야 합니다.

노 대통령은 링컨의 통합리더십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할 때입니다.

○조 교수=지난 4년간의 정책실패에 집착해 남은 1년을 만회하겠다는 조급증에서 벗어나는 게 중요합니다.

남은 1년을 백지 상태에서 잘 추스리면 국민에 실망을 주는 정권으로 남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보다 대통령이 또 정치에 대해 언급하는 모습을 보고 국민은 몹시 괴로워합니다.

이제 경제,특히 민생안정에 올인해야 합니다.

또 고준담론에 빠져 패러다임을 찾아 스웨덴 네덜란드를 여행하는 그런 행태는 벗어나야 합니다.

안전운전이 필요한 때입니다.

아마추어리즘을 남발하기 보다는 레임덕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정책을 몇 개라도 찾아 실효성있게 추진하는 게 바람직한 해법이지요.

정리=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