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16일 후진타오(胡錦濤) 주석과 정상 회동을 갖고 17일 귀로에 오른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국제사회의 최대 관심사인 북핵 문제와 관련, 북중 간에 어떤 논의가 있었는 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 위원장의 8일간 방중이 표면적으로는 중국 `개혁.개방의 1번지'인 남부도시에 집중됐지만 북핵문제는 북한의 개혁.개방의 핵심고리라는 점에서 북중 간에 어떤 식으로든 이 문제에 대한 해법찾기 논의가 있었을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이다. 특히 위폐 논란과 이를 근거로 한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 공방으로 차기 6자회담이 장기 교착국면으로 빠져들면서 6자회담의 모멘텀 상실이 우려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북중 정상 회동에서 의견 교환이 이뤄졌을 공산이 커 보인다. 김 위원장은 16일 오후 베이징(北京)에 도착해 후 주석과 만찬 회동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두 정상은 회동에서 북한의 경제 개혁.개방 문제와 북핵문제 해결을 소재로 의견을 나눈 것으로 추정된다. 2002년 7월1일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계기로 맹아적 자본주의 시장경제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이미 `경제 변화'를 겪고 있는 북한으로선 추가적인 경제 개혁이 우선적 인 관심사이고 북핵 해결은 이를 위한 선결조건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 김 위원장은 덩샤오핑(鄧小平)의 `남순'(南巡) 경로와 유사한 선전과 광 저우 등의 시찰에 집중해 7.1 조치에 이은 `제2의 경제개혁' 의지를 드러냈다. 따라서 정상 회동에서 북한은 중국 측에 `남순'을 바탕으로 자국의 발전모델을 구상하고 그에 대한 자문을 구하는 데 가장 큰 비중을 두었을 개연성이 크다. 나아가 덩샤오핑이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 지도부 내부에 보수주의가 팽 배하면서 개혁.개방에 대한 회의적인 논란이 일자, `남순'을 계기로 이를 일소하고 다시금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고삐를 죄어갔다는 점에서 그 경험을 전수받으려 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북핵문제와 관련해서는 보다 구체적인 논의가 오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작년 `9.19 공동성명'으로 합의된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재확인하고 공동성명의 이행방안 논의 착수를 막고 있는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의견 교환이 이뤄졌을 것으로 보인다. 공동성명이 북한의 핵포기와 한국.미국.중국.일본.러시아 5개국의 에너지와 경 제 지원, 그리고 북-미, 북-일 관계 정상화를 뼈대로 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사 실 북한이 쓸 수 있는 카드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으며 따라서 북한은 자국의 열세 를 극복하기위해 중국의 지원을 요청했을 공산이 크다. 특히 인권, 미사일 등의 다른 북미 양자현안과는 달리 위폐사건은 국가 신인도 와 직결돼 `포스트 북핵' 시기에도 국제사회 편입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도 있 어 김 위원장이 중국을 상대로 `현명한 방책'을 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의 불법활동이 개별기업을 통해 이뤄졌을 수도 있다"는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의 12일 위폐문제 발언에 비춰볼 때 미 행정부가 해결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는 것으로 판단됨에 따라 북한이 위폐 관련자 처벌과 재발방지를 약속한다면 절충점이 찾아질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그동안 중국 정부는 기본적으로 북핵 6자회담과 북한의 불법 행위는 분리, 논의 되어야 하며 6자회담이 조속히 재개돼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오고 있다. 주목되는 점은 위폐문제 해법의 열쇠라고 할 수 있는 마카오 소재 방코델타 아시아(BDA) 사건에 대해 중국측이 어떤 입장을 보였느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 정부 고위 당국자는 "중국 측은 작년 말 `국물에 벌레가 빠졌다면 벌레를 구체적으로 확인하지 않고 국물을 쏟아버릴 수도 있다'는 말로 BDA 사건에 대한 입장을 비쳤다"고 전했다. 이는 북한의 불법행위(벌레)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조사 결과를 아예 발표하지 않을 수 있다(쏟아버리기)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로 미뤄 중국 측은 자국의 조사 결과를 북한이 수긍, 적절한 후속조치를 취하고 미국이 이에 동의해 BDA 동결조치를 해제함으로써 차기 6자회담을 조속히 재개시키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정황들을 감안하면 19일(현지시간) 위싱턴에서 열리는 한미 장관급 전략대화가 차기 6자회담의 조기 개최 여부를 알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중-일, 한-중 6자회담 수석대표간 회동에 이어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의 한ㆍ중ㆍ일 순방, 그리고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을 통해 사전협의가 활발히 이뤄졌다는 점에서 이번 전략대화에서 차기 6자회담 재개를 위한 구체적인 논의가 오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이귀원 기자 kji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