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사망과 관련해 사퇴 압력을 받아오던 허준영 경찰청장이 29일 오영교 행정자치부 장관에게 사표를 제출했다.


허 청장은 이날 "연말까지 예산안 처리 등 급박한 정치 현안을 고려해 평소 '국가경영에 동참하는 치안'을 주창했던 저로서는 통치에 부담을 드려서는 안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사퇴의 변을 밝혔다.


허 청장은 그러나 "(이번 농민 사망이) 공권력의 상징인 경찰청장이 물러날 사안은 아니라는 판단에는 변함 없다"고 소신을 유지했다.


허 청장은 또 "평화적 집회시위 관리를 위한 대책 마련에 있어 관련 법규를 강화하는 것은 오히려 과격 시위를 부추길 수 있다.


거국적으로 뜻을 모아 평화적 집시 문화를 꼭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사임 발표문은 허 청장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허 청장은 이날 오전 평상시와 같이 일일회의를 주재했고 이어 자신의 신년메시지가 담긴 영상물 시연회에 참석했지만 사퇴를 밝힌 뒤 경찰청사 9층 청장실에 머무르며 외부와 접촉을 끊었다.


취임 11개월 만에 낙마하게 된 허준영 경찰청장은 경찰 조직 내에서 소수파인 고시(외무고시 14회) 출신이라는 점에서 경찰개혁의 적임자로 집중 조명을 받으며 치안 총수에 올랐었다.


허 청장은 기대에 부응하듯 '인권경찰'과 '검·경 수사권 조정'을 조직 운영의 두 축으로 삼아 뚝심 있게 추진했다.


군사정권 시절 공안사범 수사로 악명이 높았던 남영동 대공분실을 폐지해 인권보호센터로 변모시켰고 10월4일을 '인권의 날'로 천명했다.


특히 경찰청장 인사청문회 때부터 과감하게 언급한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에서도 허 청장의 역할은 가히 절대적이었다.


법률상 경찰의 상위 조직인 검찰에도 소신을 굽히지 않고 직격탄을 날리는가 하면 때론 완급 조절을 하면서 대립각을 세움으로써 검찰을 긴장시킨 불도저 스타일의 과감성과 추진력은 조직 내에서 큰 지지와 신뢰를 받았다.


그러나 '인권경찰호 선장'을 자처했던 허 청장은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농민 2명이 사망하는 지극히 '비인권적'인 암초에 부딪쳐 좌초하는 결말을 맞게 됐다.


청와대는 이날 허 청장의 사표를 수리했다. 후임 경찰청장으로는 치안정감인 최광식 경찰청 차장(56·전남 고흥),강영규 경찰대학장(57·경남 합천),이택순 경기청장(53·서울) 등이 거론되고 있다.


한편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민단체와 시민사회단체는 허 청장의 사퇴에 대해 "늦었지만 당연하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김철수 기자 kc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