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30일 사망한 남파간첩 출신 장기수 정순택씨가 불귀의 객이 되어서야 북측 가족의 품에 안겼다. 정부는 2일 오후 6시37분께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와 군사정전위원회 사이 군사분계선에서 정 씨의 시신과 유품을 북측 장남인 정태두(김책공업종합대 교수)씨에게 인도했다. 태두씨는 이 자리에서 "(아버지가) 돌아오시기를 어머니도 바랬고 우리 자식들도 바랬으나 이렇게 시체로 오시다니 정말 유감스럽다"고 말했다고 우리측 한 참석자가 전했다. 시신 인도는 이날 발인을 1시간30분 앞둔 오전 9시30분께 정씨의 시신을 재북 가족에게 보내달라는 북측의 요청을 우리 정부가 받아들이면서 이뤄졌다. 정부가 남측 거주 사망자의 시신을 북측 유족에게 인도한 것은 처음이다. 또 정씨가 생전에 1989년 전향 후 가석방된 뒤 1999년 '고문과 강압에 의한 전향서는 무효"라며 전향 철회를 선언했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비록 사망했지만 전향 장기수의 첫 송환 조치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이날 정씨 시신의 북송은 앞으로 정부가 전향 장기수의 북송을 적극 검토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정부는 암으로 서울 보라매병원에 입원 중이던 정씨가 지난 달 30일 갑자기 패혈증이 겹치면서 2∼3일 더 생존할 것이라는 소견이 나오자 같은 날 오후 2시 대한적십자사 총재 명의로 임종을 위한 재북 가족의 남측 방문을 요청했다. 정씨는 이 요청에 대한 북측의 답이 오지 않은 상황에서 같은 날 오후 6시50분께 84세를 일기로 사망했고 정부는 오후 10시30분께 북측에 사망 사실을 알렸다. 정부 당국자는 "장기수 북송 문제를 검토하던 중이었으며 이런 과정에서 갑자기 정씨의 병세가 악화돼 북측 가족의 임종이 이뤄지지 못해 아쉽게 생각한다"면서 "이번 임종 요청과 시신 송환 결정은 전적으로 인도주의적 차원의 조치"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런 조치가 남북관계 화해와 인도적 문제 해결에 기여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충북 진천이 고향인 고인은 1948년 상공부 공무원으로 재직하던 중 월북해 북쪽에서 기술자격 심사위원회 책임심사원으로 일했으며 1958년 남파됐다 체포된 뒤 1989년 12월 전향후 가석방될 때까지 31년 5개월간 복역했다. 정씨는 1999년 전향 철회를 선언하고 6.15 공동선언 직후인 2000년 9월 1차 북송 당시 북송을 희망했지만 전향자라는 이유로 대상에서 제외됐고, 그 후로도 북송을 희망해 오다 지난 달 4일 입원, 췌장암 및 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고인은 북측에 태두씨를 포함해 아들 4형제를 두고 있으며 모두 고위직에서 활동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판문점=연합뉴스) 공동취재단.정준영 기자 princ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