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대선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현 국가정보원)의 도청 비밀조직의 불법 도청 테이프 관련 보도에서 MBC 뉴스데스크는 `이름'을 내세웠고, KBS 9시 뉴스는 `내용'을 공개했다. 21일 오전부터 본격적으로 불거진 대선 자금과 관련한 한 중앙일간지 고위 인사와 모 대기업 고위 임원간 대화내용 녹취록 파문 보도에 양 방송사는 내용과 형식이 다른 보도를 내보냈다. MBC 뉴스데스크는 당사자의 방송금지가처분 신청후 내려진 서울 남부지법의 판결로 인해 테이프의 내용을 직접 공개하지 못하게 되자 뉴스 첫 머리에 가처분 신청건과 관련된 내용을 보도했다. MBC측이 인용한 남부지법의 결정 내용은 "큰 틀에서는 보도할 수 있지만 불법 도청물인 이상 원음을 직접 보도해선 안되며, 대화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거나, 테이프에 나타난 실명을 직접 거론하면 안된다"는 것. 이에 따라 테이프 육성 공개 등을 준비했던 MBC 보도국의 취재 내용은 대부분 전달되지 못한 채 가처분 신청건, 사건 개요, 테이프 입수 과정과 일부 테이프 내용, 가처분 신청을 낸 당사자 반응 등을 골자로 보도됐다. 그러나 KBS는 테이프 내용 공개에 주력했다. KBS 9시 뉴스는 테이프 속 당사자들이 당시 대선 후보들에게 대선자금을 전달하는 방법 논의, 모 자동차 회사 인수 방식, 한 대통령 후보의 건강 문제 등 내용을 비교적 `소상하게' 공개했다. KBS는 테이프가 아닌 녹취록을 이날 입수해 이를 근거로 보도했다. KBS 1TV 뉴스제작팀 김진석 팀장은 "취재원으로부터 녹취록을 입수했고, 오늘 오후 편집회의에서 녹취록 내용이 상당한 신빙성을 갖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보도를 결정했다"고 전했다. 그는 "고문 변호사의 법률 검토를 마친 이후 MBC를 상대로 한 방송금지가처분 신청의 결정 내용을 보고 이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기사를 작성했기 때문에 보도내용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KBS 뉴스가 이같이 적극적인 공세를 취한 데 대해 MBC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MBC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 "MBC는 이 신청건의 당사자이기 때문에 법원의 결정 취지대로 공개할 수 없었다"며 "내일 법원에 이의신청 등 법적 대응을 취할 것"이라며 대응 방안을 밝혔다. MBC는 이날 오전 보도국 간부.평기자들의 난상토론을 펼쳐 오후 2시30분께 보도 방침을 결정했다. 이런 결정이 이뤄진 직후 녹음테이프에 등장하는 당사자들이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서울 남부지법에 냈고, 이에 MBC는 "육성이 담긴 테이프 공개를 제외한 채 준비한 기사를 모두 내보낼 것"이라고 보도 의지를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오후 8시께 남부지법의 결정이 내려지면서 MBC 뉴스는 법원의 결정 취지를 살리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 잔뜩 기대했던 시청자들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이날 오전까지만 하더라도 MBC 내부에서는 '보도불가' 방침을 고수했다. MBC측은 그 이유로 '입수된 녹음테이프 자체가 불법 도청된 것이며, 이 내용을 증명해줄 취재원이 자신의 신분을 밝히기를 꺼리고 있어 통신비밀보호법 저촉 등 법적인 문제가 뒤따를 수 밖에 없다'는 점과 '취재 내용이 완벽하지 못하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이날 오후 수시간에 걸친 마라톤 회의 끝에 `현 시점에서 가장 많은 자료를 갖고 있고, 이를 토대로 취재를 해온 MBC가 보도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당초의 방침을 번복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MBC 보도국은 8명으로 이뤄진 특별취재팀을 곧장 꾸렸고, 테이프 육성 공개까지도 결정했다. 문제는 가처분 신청을 접수한 법원의 최종 결정이었다. 이날 오후 5시부터 서울 남부지법 민사 51부에서 방송금지가처분 신청에 대한 심리가 시작됐고, 오후 7시께 법원은 "원고가 제출한 자료만으로는 판단하기 힘들다"는 전제 아래 추가 접수한 MBC의 구체적인 보도 내용을 토대로 `최종 결정'을 내린 것이다. 어쨌든 MBC는 보도 결정까지의 과정과 막상 뚜껑을 열고보니 '알맹이는 없었다'는 시청자들의 평가를 놓고 안팎의 비판여론에 직면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김가희 기자 kah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