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3부 요인, 여야4당 대표가 25일 모처럼 한 자리에 모였다.

특히 노 대통령이 제1야당인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와 자리를 같이한 것은 박 대표 취임 이후 처음이어서 이날 만찬에 많은 관심이 쏠렸다.

이날 회동은 노 대통령이 지난 12-23일 남미 3개국 순방 및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결과 등을 설명하기 위해 마련한 만찬 자리로, 노 대통령이 참석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이뤄졌다.

노 대통령은 오후 6시30분께 청와대 인왕실 옆 대기실에 입장, 이해찬(李海瓚)국무총리 등 기다리고 있던 3부 요인 및 여야 대표들과 악수하며 "오랜만입니다"라고 인사했다.

노 대통령은 박 대표와 악수할 때 카메라 셔터 소리가 일제히 울리자 "셔터 소리가 많이 나오네요"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으며, 박 대표는 "고생이 많으셨습니다"라고 밝은 표정으로 화답했다.

이어 노 대통령은 참석자들과 함께 만찬장으로 이동했다.
노 대통령의 맞은 편에는 김원기(金元基) 국회의장, 오른편에는 최종영(崔鍾泳) 대법원장, 왼편에는 이 총리가 각각 자리했다.

의석수 등을 감안한 탓인지 의전상 그 다음 `상석(上席)'으로 분류되는 국회의장의 오른편에는 열린우리당 이부영(李富榮) 의장의 자리가 배치됐으며, 박근혜 대표는 국회의장 왼편에 자리를 잡았다.

또한 민주당 한화갑(韓和甲) 대표, 자민련 김학원(金學元) 대표, 열린우리당 천정배(千正培), 한나라당 김덕룡(金德龍) 원내대표 등이 자리했으며, 청와대 김우식(金雨植) 비서실장, 김병준(金秉準) 정책실장, 권진호(權鎭鎬) 국가안보보좌관, 이병완(李炳浣) 홍보수석, 정우성(丁宇聲) 외교보좌관, 김종민(金鍾民) 대변인 등이 배석했다.

노 대통령은 인사말을 통해 "반갑다"고 다시 인사한 뒤 "순방결과는 이미 보도를 통해 더 알 것"이라며 "특별히 부풀릴 것도 없고, 특별히 줄일 것도 없다"고 말문을 열었다.

노 대통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을 모신 것은 순방과정의 여러가지 일들중에서 궁금하신 것이 계실 수 있고, 지금 국내외 여러가지 어려운 것이 많은데 우리 국민들이 보기에 정치가 원만하게 풀리지 않을까봐 걱정이 많다"며 초청 배경에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그러면서 "실제 이 자리가 얼마나 도움이 될 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서로 이렇게 얼굴을 맞대고 대화는 모습이 국민들이 바라는 바"라며 "특별한 내용이 없더라도이런 기회에 허심탄회한 공사간 대화가 의미있다고 생각한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김원기 의장은 "안보.외교문제는 정파간 차이가 있을 수 없으며, 정파간 협력을위해서는 인식과 정보의 공유가 필요하다"며 "이번에만 그치지 말고 주요 외교현안이 있으면 여야 모든 정당에 성의있는 정보제공과 설명을 하면 고맙겠다"고 건의했다.

김 의장은 또한 "우리 형편이 어렵다"며 "국민들의 힘을 모으는 화합운동이 필요하며, 오늘 대화를 나누는 자리가 국민화합을 위한 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며 인사말을 마무리했으며, 이에 노 대통령은 "우리 박수 한번 칩시다"며 호응하기도 했다.

만찬에 앞서 여야 대표들은 국회 신행정수도 후속대책 특위 등 국회운영을 주제로 환담했다.

자민련 김 대표가 "우리당 의원 4명 모두 충청권인데 우리 자민련도 특위에 넣어달라"고 볼멘소리를 하자, 특위위원 숫자에 대해 천정배 원내대표는 `22명'을, 김덕룡 원내대표가 `21명'을 즉석에서 제시하기도 했다.

또한 민주당 한화갑 대표는 "국회를 원만히 운영하려면 어느 당도 과반이 안되게 하면 된다"고 운을 뗐으며, 김덕룡 대표가 "지금 과반을 넘었는데 어떻게 하냐"는 질문에 한 대표는 다시 "원대복귀시키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박근혜 대표는 "청와대에 얼마 만에 왔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주 오랜만이다"며 "국민의 정부 때 행사가 있어서 한번 왔었다"고 짤막하게 답했다.

오후 6시30분부터 시작된 만찬 회동은 김원기 의장의 사회로 9시10분까지 2시간
40분간 이어졌으며, 박 대표를 시작으로 노 대통령과 참석자들이 의견을 주고받는 문답 형식으로 시종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중식에 와인을 곁들인 회동에서 노 대통령은 순방외교를 통해 갖게 된 소회를
털어놓는 한편 민생경제 현안과 북핵 및 남북정상회담 문제, 4대 입법 문제에 관해 솔직한 입장을 밝히고 이해를 구했다.

노 대통령은 해외에 진출해 있는 우리 기업인들의 자세를 높이 평가한 뒤 "우리
국민들이 어디가든 잘하고 역량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며 "어느나라 국민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언제 말을 해도 우리 국민 최고라고 말하고, 자부심을가져라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박 대표는 정부.여당이 추진중인 공정거래법 개정안과 연기금 투입 방안
을 거론,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뒤 4대 입법 문제와 관련, "무리하게 추진되지 않도록 대통령이 잘 해결해주기를 부탁드린다"고 요청했다.

이에 노 대통령은 "4대 법안과 관련해서는 국회에서 정당간 협의해 처리를 해주
시는 게 좋겠다"면서 "영수회담 시대는 지나갔다. 대통령이 당을 지휘, 명령, 감독하는 문제가 아니다. 명실공히 국회 권한이 커진만큼 국회에서 각당이 원만한 협의로 처리를 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연기금 문제와 관련해서 노 대통령은 "연기금은 가장 강력한 국민 자본인데 손
발을 묶어놓고 외국자본이 우리 증권시장을 장악하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관련 법안 처리를 위한 박 대표의 협조를 요청했다.

그는 특히 "내 임기만 버티기 위한 정책은 하지 않겠다"면서 "다음 정권이 어디
가 되든, 정권을 인수한 뒤에 경기대책에 매달리지 않는 정책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다시 박 대표가 "연기금 문제는 안전하게 전문적으로 관리를 하는 것이 중요하
다"면서 "출자총액제한 등 기업 규제는 좀 푸는 게 필요하다"고 하자, 노 대통령은 "기금을 쓰지 못하게 하는 방법보다는 잘 안전하게 쓰도록 감시, 감독하는 방법을 찾는 게 현명한 방법 아니냐"고 반문했다.

노 대통령은 또 "향후 북핵문제 해결에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한다는 의미가 무
엇인가"라는 김덕룡 원내대표의 질문을 받고 "6자회담 틀내에서 공조를 중심으로 우리 의견을 적극적으로 내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인내심을 갖고 원칙과 정도를가지고 대처할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국회의 역할을 재차 강조한 뒤 "지금은 대통령의 결단에 의해
서가 아니라 국회가 정치의 중심에 서서 국민의 여론을 수렴해 여러가지 현안들을녹여내는 것이 새로운 시대에 맞는 것"이라며 국회와 정당이 현실정치의 중심이 돼야 한다는 소신을 거듭 피력했다.

참석자들은 회동 말미에 "아무 때나 중요한 주제가 있으면 자주 만나서 이렇게
얘기하자"는 노 대통령의 `상시 대화' 제의에 박수로 화답했으며, 노 대통령은 현관까지 나가 배웅했다.

회동을 마친 뒤 여야 대표들은 각 당 대변인을 통해 또는 직접 회동결과에 대해
설명했으나 평가는 엇갈렸다. 열린우리당 이부영(李富榮) 의장은 "전체적으로 진지하게 대화가 오갔고, 대통령이 솔직하게 견해를 말씀했다"면서 "외국순방 결과를 설명하는 자리가 아니더라도자주 이런 자리를 가졌으면 한다는 데 모두 공감했다"고 평가했다고 김현미(金賢美)대변인이 전했다.

이 의장은 그러나 "정책현안에 대해선 여야가 국회에서 처리해야 한다. 지금은
영수시대가 아니다"고 말해 국가보안법 폐지를 비롯한 `4대 입법' 등 정국현안에 대해선 영수회담이 아니라 국회 차원에서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천정배(千正培) 원내대표도 "여야간에 매우 솔직한 대화가 오간데 의미가 있으
며 상호간에 신뢰증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이견을 해소할 수 있는 바탕이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반면 한나라당 박 대표는 회동을 마친 뒤 전여옥(田麗玉) 대변인에게 전화를 걸
어 회동결과를 설명했으나 회동 결과엔 별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분위기를 보였다.

박 대표는 "노 대통령에게 경제민생 문제를 강조하고 여기에 많은 부분을 할애
해 얘기했다"며 노 대통령과 주고받은 얘기를 담담하게 전달했다. 제1 야당 대표로서 노 대통령과 처음으로 공식 회동을 가진 소감이나 이번 회동에 대한 평가 등에 대해선 아예 입도 떼지 않았다.

제1 야당 대표임에도 불구, 이날 모임이 대통령과의 단독회동이 아닌 다자회동
으로 진행된 데다가 애초 회동 취지도 정국현안에 대해 의견을 듣는 자리보다는 대통령 해외순방 성과를 설명하는 자리로 마련된 데 대한 불쾌감을 우회적으로 드러낸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박 대표는 "회담 분위기가 어땠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글쎄요'하고 말았다"
고 전 대변인은 전했다. 이에 반해 민주당 한화갑(韓和甲) 대표와 자민련 김학원(金學元) 대표는 오랜만에 `비교섭단체'의 설움을 해소한 탓인지 긍정적 평가가 주류를 이뤘다.

한 대표는 장전형(張全亨) 대변인을 통해 "각 정당을 대표하는 지도부가 대통령
과 함께 당의 이념과 정체성을 토대로 국정을 논하는 자리였던 만큼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자민련 김 대표도 "어떤 합의가 이뤄진 것은 아니지만 이같은 자리를 통해
여야간 갈등을 해소할 수 있고, 국민들이 걱정하는 점도 함께 협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생산적인 회동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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