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국회의 임기가 지난 달 30일 시작됐지만 국회의장단 구성만 겨우 마쳤을 뿐 의원들의 상임위 배정 및 상임위원장선출이 미뤄지고 있어 상임위가 가동되지 못하고 있다. 한달 가까이 `개점휴업' 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김선일씨 피랍.피살사건, 이라크 추가파병, 주한미군 감축, 경제난 심화, 청년실업 및 민생불안 등 현안이 산적해 있으나 국회의 제대로된 활동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국회는 여론의 비판을 의식한 듯 총리후보 인사청문특위에 이어 김선일씨 피랍사건 관련 국정조사특위 활동을 통해 발등의 불만 겨우 꺼가면서 소걸음을 하고 있다. 여야가 '상생의 정치'를 강조하면서 `일하는 국회'를 내세웠던 17대 국회 임기시작 직후의 모습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이다. 17대 국회가 시작하면서 여야는 역대 국회에 대해 `정쟁만 일삼았던 국회'라고 새로운 탄생을 다짐했지만 여전히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회법은 국회의장단 및 상임위원장 선출 시기를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이를 강제하고 있으나 여야는 이를 헌신짝처럼 무시해 버렸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13대 국회이후 16년만에 여대야소 정국이 됐지만 소수 야당을 설득해 타협을 이끌어내는 등 정치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야당인 한나라당은 다수당 시절 내세웠던 `수의 정치 원칙'을 무시한 채 한 치의 양보없이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다. 김원기(金元基) 국회의장의 중재능력, 조정력 부족도 아쉬운 점으로 꼽힌다. 김 의장은 지난 18일 개인성명을 통해 21일까지를 원구성 협상 데드라인으로 제시한 뒤 여야가 이를 지키지 못할 경우 국회법과 의장에게 부여된 권한에 따른 `국회정상화'를 천명했지만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협상 걸림돌은 여전히 법사위원장 배분과 예결특위의 일반상임위 전환 문제. 열린우리당은 "여당으로서 책임있는 국정운영을 위해 운영.법사.국방.정보.예산결산특위 위원장을 맡아야 하며, 예결특위의 일반상임위 전환문제는 국회개혁특위에서 논의하자"는 기존 입장을 계속 고수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여당의 독주를 막기 위해 `출구'에 해당하는 법사위원장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면서 "여당도 예결특위 상임위 전환에 대해선 총선에서 공약하고 여야회담에서 합의한 만큼 즉각 수용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여야 일각에선 지난 주부터 "협상에 진전이 있었다"며 "조만간 가동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으나 여전히 가시적인 성과는 드러나지 않은 채 물밑신경전만 계속되는 분위기다. 무엇보다도 여야 모두 타협하고 절충하기 보다는 `원칙의 문제'임을 내세워 상대방에게 일방적 양보를 강요하고 있어 쉽게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비교섭단체로 협상 자체에서 배제된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은 원구성협상이 늦어지고 있는 데 대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노동당 의원단 대표인 천영세(千永世) 의원은 "이렇게 큰 사건(김씨 피살)이 났는데도 원 구성조차 못해 국회가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면서 "그래서 우리는 국회법을 '교섭단체법'이라고 칭한다"고 꼬집었다. 민주당 장전형(張全亨) 대변인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밥그릇 싸움' 때문에 긴급한 현안들을 처리못하는 것은 국회의 직무유기"라며 "'새로운 국회', '일하는 국회'라고 다짐했던 것이 모두 공염불이 되고 있다"고 비난했다. (서울=연합뉴스) 김병수 이승우 김중배기자 bings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