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무장단체에 납치됐던 가나무역 김선일씨가 끝내 피살됨에 따라 정국이 엄청난 회오리에 휘말릴 조짐이다. 특히 열린우리당 재야.소장파 의원들과 민노당 의원 전원,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의 이라크 추가파병 재검토 결의안을 23일 제출할 예정으로 있어 정국이 거센 파병 찬반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또한 이번 피살과 관련한 숱한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 정부가 한국정부에 피랍 사실을 인지하고도 통보하지 않았는지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재연될 소지 등 한.미 관계가 논란의 중심에 서게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우리 정부는 당초 '파병과 납치는 별개 사안'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파병 원칙을 재확인할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이날 오전 대국민성명도 테러 위협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주요 골자다. 추가 파병은 국제사회와의 약속이며 그것이 테러집단의 위협으로 인해 영향을 받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또한 테러 위협에 굴복해 파병을 유보할 경우 제2, 제3의 테러를 불러 올 수 있다는 우려에서 미국을 비롯한 상당수 국가들이 `테러집단과는 협상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김씨의 피살 사건은 확산되고 있는 파병 재검토 움직임에 상당한 명분을 제공할 것으로 보이며 파병 강행이 실제로 어려운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관측도 만만치 않다. 열린우리당 김원웅(金元雄) 의원을 비롯한 30명 안팎의 의원들이 이미 추가 파병 재검토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상태인데다, 민노당 의원 10명은 파병 반대농성을 벌여왔고, 한나라당에서도 고진화(高鎭和)의원 등 3-5명 가량이 동참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우리당내에서 그동안 여당의원이라는 입장 때문에 파병 재검토론에 동참을 꺼려온 일부 의원들도 동요할 가능성이 커 세는 더욱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파병론에 찬성했던 한 소장파 의원은 "명분없는 전쟁에 참여했다가 김씨가 살해됐는데 또 다른 젊은이들을 희생시킬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특히 탄핵 반대 시위와 마찬가지로 이미 광화문에서 민노당 및 시민사회단체 주관의 파병 반대 시위가 열리기 시작했고, 이것이 김씨 피살을 계기로 확산될 경우 상황은 걷잡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김씨 피살은 파병의 정당성을 부여해 줄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국방장관 출신의 조성태 의원은 "지구상에서 가장 전형적인 불의의 방법으로 김씨를 살해했다"며 "우리가 그 불의앞에 무릎을 끓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유인태(柳寅泰) 의원도 "파병 결정에는 이 정도의 어려움을 감안했던 것"이라며 "고뇌에 찬 정부의 결단을 흔들림 없이 추진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의혹 규명을 둘러싼 논란도 심상치 않아 보인다. 이미 열린우리당 김근태(金槿泰) 의원은 22일 당내 국방.통외통위 연석 회의에서 "미국이 피랍사실을 알고도 그 사실을 우리 정부에 통보해 주지 않았다면 한.미동맹에 큰 문제"라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또한 가나산업의 김천호 사장의 진술이 분명치는 않지만, 17일께 피랍 사실을 미군으로부터 통보받았다는 주장이 나왔고, 일각에서는 김씨가 이보다 훨씬 이전인 5월31일께 피랍됐다는 주장마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우리당내 재야.소장파 일각에서는 피랍 시점이 한국정부의 이라크 추가파병 결정(18일)이 임박한 시점이었다는 점에서 미국의 `의도성'에 초점을 맞추기도 한다. 한 소장파 의원은 "만일 미국측이 사전 인지해서 이를 한국정부에 통보했다면 추가파병 결정이 신중했을 것"이라며 "그런 점에서 이번 사안은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여기에는 21일 열린우리당 초.재선 의원 모임인 `새로운 모색'의 성명에서도 드러났듯 우리 사회 진보진영의 대미 인식, 특히 부시 미행정부에 대한 반감도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당내 보수진영 일각에서는 `한.미 동맹에 균열을 초래할 수 있는 음모론적 시각은 거둬들여야 한다"는 의견도 상당수다. 더욱이 한반도 분단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정부의 입지를 축소시킬 수 있는 언급이나, 행동은 되도록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정국이 여야간 입장차와 함께 현안을 보는 여당 내부의 이견으로 인해 논란이 증폭될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서울=연합뉴스) 김현재 기자 kn020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