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이라크 추가파병에 대한 재검토 또는 철회논란이 점차 확산되면서 정치권 전반에 미묘한 기류가 일고 있다. 이라크내 정정이 점점 더 불안해지고 미군과 영국군의 이라크 포로 학대문제가 불거지자 17대 국회 제3당인 민주노동당은 추가파병 철회를 본격 제기하고 나섰다. 그러자 과반 여당인 열린우리당 내부에서도 파병 재검토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으며 16대 국회에서 과반 의석수로 정부의 추가파병을 적극 지원했던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파병재검토 요구가 제기될 경우 이에 응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10석 밖에 안돼 단순 의석수만으로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사이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기 어려운 단일 칼라의 민주노동당이 이슈를 선점하며 정치적 스펙트럼이 다양한 여당과 야당의 정책결정에까지 영향을 미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반면 거대여당인 열린우리당과 제2당인 한나라당 내부에선 소장.개혁성향의 소신파 당선자들과 중도 및 보수성향의 온건파 당선자간에 정국주도권 싸움 양상이 드러나는가 하면 여야를 넘어 소장.개혁파간엔 물밑 연대 움직임마저 감지되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논의가 점증하고 있는 이라크 추가파병 문제가 17대 국회에서의 정책결정 및 여야관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첫 시험대가 되고 있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총선과정에 추가파병 철회를 공약했던 민주노동당은 9일 당선자 연수에서 17대 국회가 개원되면 곧바로 파병 철회를 추진하겠다고 거듭 선언했다. 권영길(權永吉) 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17대 국회 개원뒤 파병이 철회되도록 앞장 설 것"이라며 "민주노동당이 파병철회를 제안하고 분위기가 성숙하면 파병철회 의사를 밝히는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17대 국회 과반여당인 열린우리당 내부에서도 파병철회까지는 아니더라도 파병재검토 주장이 세를 얻어가고 있다. 이미경(李美卿) 상임중앙위원은 10일 회의에서 "이라크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검토하고 파병문제도 재검토하지 않으면 국론분열이 될 수 있고 당 정체성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면서 "이 문제를 검토하는 기구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송영길(宋永吉) 당선자는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 파병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뒤"(원내대표 경선에서) 파병을 계속 주장하는 분에게는 투표하지 않겠다"고 말해 당내에서 파병문제를 원내대표 선출과 결부시킬 방침임을 시사했다. 임종석(任鍾晳) 당선자도 "현 시점에서 이라크 추가 파병을 강행할 명분을 찾기 어렵고, 쟁점이 불거질 경우 확 불이 붙을 수 있는 사안"이라면서 "당.정이 이 문제로 충돌을 빚지 않도록 조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앞서 9일 김근태(金槿泰) 원내대표는 성명을 내고 "약속이행 등 파병에 관한 기본 인식의 틀에는 변화가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진전된 검토를 할 필요가 있는 상황이 조성되고 있고, `평화재건부대'라는 파병 목적을 수행할 수 있는 상황인지 주의깊게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신기남(辛基南) 상임중앙위원은 "(파병에 대한) 초.재선 의원들의 왕성한 토론은 바람직하나 안보의 수장인 대통령 판단이 중요하기 때문에 여당으로서 신중해야한다"면서 "한반도 안보와도 직결되는 문제"라며 신중론을 펴 개혁.소장파의 원들과 온도차를 드러냈다. 정동영(鄭東泳) 당 의장은 아직까지 이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이 없다. 여파는 16대 국회에서 파병동의안 처리를 주도했던 한나라당으로도 번지고 있다. 재야출신인 이재오(李在五) 당선자는 10일 "지금은 처음 파병을 결정한 당시와는 전황이 달라졌기에 정부.여당이 파병시기, 부대 성격 등을 명시해 재검토를 논의해오면 야당은 이에 응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 당선자는 특히 파병 시기.부대성격에 대한 재검토 뿐만아니라 파병철회도 검토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원희룡(元喜龍) 당선자도 "이라크 파병 재검토 문제가 뜨거운 현안이 될 것"이라면서 "정부당국에 이라크 상황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요구하고 정부의 견해와 한미간 그동안의 협의를 요구한 뒤 상임위 차원이든 여야 협의 차원이든 본격적으로 검토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가세했다. 이에 대해 박근혜(朴槿惠) 대표는 "(파병은) 많은 토론과 어려움을 다 거치면서 국회에서 결의해 통과된 사안"이라면서 "국회에서 통과된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고 반박했다. 물론 박 대표도 이라크 파병에 대한 재검토 가능성을 완전 차단하지는 않았지만 어디까지나 정부가 야당에게 논의를 요청해오면 그때가서 논의할 수 있는 문제이지 먼저 야당이 주도할 사안은 아니라고 못박았다. 한나라당은 일단 정부와 여당에 1차적으로 공을 떠넘기며 당내 견해차를 극복해가는 집안단속에 나서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개혁성향의 초.재선 당선자들이 여야를 뛰어넘어 사안별로 연대할 조짐마저 보이고 있어 17대 국회에선 전통적인 여야관계에 큰 변화가 오는 게 아니냐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개혁.소장파 당선자들이 국회에서 사안에 따라 새로운 그룹을 형성할 경우 국회내 의사결정에도 적지않은 변화가 뒤따를 것이라는 예상도 낳고 있다. 이와 관련, 각 당 내부에선 17대 국회 운영과 관련, 당론투표가 아닌 크로스보팅의 전격 도입 및 당론 강요보다 의원 개개인의 의사결정 존중을 요구하고 있어 주목된다. (서울=연합뉴스) 맹찬형 김병수 기자 bings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