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국회 본회의에 올라온 한ㆍ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 정쟁으로 밤늦게까지 진통을 겪은 끝에 또다시 처리되지 못했다. 박관용 국회의장은 "이번엔 무슨일이 있어도 처리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농촌 의원들의 반대와 표결 방식을 둘러싼 논란으로 '공약(空約)'이 되고 말았다. 본회의에서 농촌출신 의원들 14명이 반대 토론에 나서 비준안 처리 지연 작전을 폈고 회의 막판에 기명투표 해석을 둘러싸고 박 의장과 농촌 의원들의 의견이 맞서 본회의가 정회되는 소동을 빚었다. ◆ 표결방식 논란 =이날 본회의에는 무기명투표 요구안과 농촌 출신 의원들의 기명투표요구안이 동시에 올라와 표결에 부쳐졌다. 그 결과 기명투표가 채택됐지만,기명투표의 해석(투표방식)을 둘러싸고 박 의장과 농촌출신 의원들이 팽팽하게 맞섰다. 국회법에는 표결땐 전자투표로 가부를 결정하지만 재적의원 5분의 1 이상의 요구가 있을 땐 기명, 호명, 무기명 투표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박 의장은 기명투표가 채택됐기 때문에 국회법에 따라 성명이 적힌 용지에 투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농촌 의원들은 기명투표를 공개투표로 잘못 해석, 단상으로 올라가 "무기명투표 요구안이 부결되면 자동적으로 찬ㆍ반여부가 즉시 공개되는 전자투표를 하는 것 아니냐"고 거세게 항의했다. 농촌 의원들이 전자투표를 주장한 것은 찬ㆍ반 여부가 사후에 공개되는 방식으로 투표가 실시될 경우 비준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국회 관계자는 "농촌출신 의원들이 전자투표를 요구했어야 하는데 국회법을 잘 몰라 기명투표를 요구하는 바람에 오히려 제 발목을 잡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논란이 거듭되자 밤 9시12분 박 의장은 정회를 선포한 뒤 "국회법을 모르고 단상에 올라와 항의한 의원들은 사과하라"며 한동안 사회를 거부했다. 본회의 속개가 어렵다고 판단한 한나라당 지도부는 의원들에게 철수를 지시했으며,밤 10시가 넘어서자 의원들이 속속 이탈하기 시작했다. 결국 박 의장은 정회도중 고건 총리와 김진표 경제부총리를 의장실로 불러 농촌의원들과 함께 협의를 가진 뒤 비준안 처리 연기 방침을 밝히고, 10일 정부측과 각 정당 농촌출신 의원들이 간담회를 갖고 타협점을 찾도록 중재했다. ◆ 힘겨루기 =이날 본회의에서 한나라당 윤한도 이인기 송광호 이규택 김일윤 김용균 이방호, 민주당 추미애 장성원 배기운 황창주 이정일 이희규 이용삼 의원 등 14명이 반대 토론에 나섰다. 반면 찬성 토론에 나선 의원은 열린우리당 안영근 유시민 임종석 의원등 3명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본회의장은 반대파 의원들의 정부 농업정책에 대한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 찬성파인 임종석 의원은 "FTA 체결은 세계적 추세이며, 우리나라의 대외신인도를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특히 칠레와 FTA 협정땐 남미시장의 교두보를 확보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추미애 의원 등 반대파들은 "한ㆍ칠레 FTA 체결은 우리나라 농가를 더욱 피폐하게 만들 것"이라며 "최소한 도하개발아젠다(DDA)협상 마무리 때까지는 체결을 미뤄야 한다"고 맞섰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