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들이 오는 4월 15일 치러지는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일찌감치 낙선, 낙천 운동을 비롯해 당선 운동과 유권자 정보공개 운동을 선언, 시민사회와 정치권의 '빅뱅'(대폭발)이 예고되고 있다. 이미 지난 16대 총선에서 낙선, 낙천 운동의 위력을 실감한 정치권은 이번 총선에서 '2004 총선시민연대'가 주축이 된 낙선, 낙천 운동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다른 한쪽에서는 낙선.낙천의 부작용과 법적 문제를 들고나온 단체들이 중심이 돼 포지티브(positive) 운동의 일환으로 당선 운동을 선언, 적지 않은 관심과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여기에 시민단체의 영역을 벗어나 보-혁 구도에 기반을 둔 `국참 0415', `바른선택 국민행동' 등의 단체들이 자신의 지지 세력에 대한 당선, 낙선 운동에 가담, 정치적 논란까지 불러일으키고 있어 총선전까지 `혼전'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백가쟁명'식 당락 운동이 유권자의 혼란만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정치권에 시민단체가 역이용 당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 낙선운동 시동 = 참여연대가 주축이 돼 300여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2004총선시민연대'는 오는 5일 낙천 리스트를 발표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지난 대선 자금이 정치권을 옭아매고 있는 상황에서 낙천,낙선 운동은 지난 16대 총선처럼 적지 않은 파급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미 정치적 충격을 경험한만큼 `2000 총선연대'보다는 힘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일부 단체들이 빠져 나가면서 참여 단체 수가 16대 총선의 절반으로 준 데다 `20004 총선 물갈이 국민연대'와 `맑은정치 여성네트워크' 등에서는 당선 운동을 주장하며 색깔을 달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낙선 운동 내부에서도 `총선환경연대', `총선여성연대' 등 환경, 여성 단체가중심이 돼 분야별 낙선 운동을 선언하고 있고 `이라크파병반대 국민행동' 등 반전단체와 민주노총 중심의 노동계도 파병과 노동 관련 낙선 운동을 다짐하고 있어 다양하게 갈라지는 양상이다. 결국 낙선운동의 세분화와 당선운동의 희석 효과까지 겹치면서 부패 정치인에대한 낙선운동은 지난 16대 총선처럼 시민운동의 `주류'라기 보다는 다양한 흐름 가운데 하나가 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 시험대 오른 당선운동 = 부패정치 추방과 인적 청산을 요구하는 시민단체의목소리가 분화한 당선운동은 현재 크게 `2004 총선 물갈이 국민연대'와 여성의 국회진출을 목표로 내건 `맑은정치 여성 네트워크'가 추진 중이다. 16대 총선의 낙선 운동이 기존 정치권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 법적 논란을 불러일으키면서도 시민들의 폭발적 호응을 받았던 반면 당선운동은 우리 사회에서는 비교적 경험이 짧은 `포지티브' 운동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그러나 당선 운동이 법적 논란이 된 낙선 운동의 대안으로 받아들여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당선 운동 = 관권 선거 운동' 이라는 등식을 쉽게 떠올릴 수 밖에 없는 한국사회에서 시민단체의 지지 선언이 유권자들에게 얼마만큼 설득력을 지닐 수 있는가라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순수 시민단체가 아닌 정치 세력들의 당선 운동 역시 정치적 논란의 한 가운데에있다. 노사모가 주축이 된 `국참 0415'를 비롯, 보수단체가 중심이 된 `바른선택국민행동'은 각각 열린 우리당과 한나라당을 지지하면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 `참여' 운동과 인터넷 = 전통적인 시민단체의 유권자 운동 영역인 부정선거감시와 유권자 정보공개 운동은 이번 17대 총선에서도 펼쳐진다. 서울 YMCA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도입에 맞춰 정당 평가 부분에 초점을 두고선거 운동을 강화할 방침이고, 공명선거실천시민협의회는 각당 예비경선 참여를 호소하면서 대학내 부재자 투표서 설치 등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호소할 계획이다. 정치 참여 운동은 오프라인에서 진행되는 시민단체들의 활동과 함께 온라인상에서 네티즌 사이에 자발적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높다. 정치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피앤피리서치 조사 결과 전국 네티즌 1천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조사에서 60% 이상이 가장 파급력 있는 매체로 인터넷을 꼽았다. 네티즌들은 각 정당이 추진하고 있는 여론조사에 의한 공천 후보결정 방법에 대해서는 74.4%가 찬성했고, 국민경선에 참여하겠다는 의견도 68.9%에 달해 정치성향과는 별도로 적극적인 참여 의지를 나타냈다. ◆ 다양한 흐름, 관심이 중요 = 총선을 앞두고 다양한 목소리들이 제기되고 있는 것과 관련, 전문가들은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국민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기준과 정보를 제공하는게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해구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한국 정치 현실에서 선거 때 유권자 절반은 동원돼 나오는 것 같다. 자발적으로 참여하기는 하지만 지역주의 등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며 "시민단체에서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고 선택기준을 제시하면서 유권자 의식을 높이는 게 필요하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정 교수는 "수용자 입장에서는 여러 단체가 단일 기준을 제시해 주지 못하고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게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유권자 운동이 다양한 것은 그만큼 우리사회가 다양해지고 있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 교수는 "유권자 운동이 국민과 함께 호흡하는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채 특정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식으로 진행돼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정대화 상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하나의 운동으로 정치 개혁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16대 총선 시민운동이 낙선운동 위주로 더러운 물을 빼는 운동이었다면 이번 총선 시민운동의 낙선,당선운동은 더러운 물을 빼고 새 물을 집어 넣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다양한 운동 양상이라 유권자들의 주목을 끌지 못하는 문제가 있을수도 있지만 그만큼 다양한 정보를 줄 수 있을 것"이라며 "유권자들은 투표를 통해스스로 당선운동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양한 정보는 궁극적으로 더 나은 판단을하도록 도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이광철기자 gcm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