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재신임 국민투표 제안에 대한 정치권의 철회 압박이 가중되면서 재신임 투표 매듭 문제가 특검법 재의 정국의 또 다른 변수로 급부상하고 있다. 특검법 거부권 행사 이후 청와대와 야당간 가파른 대치국면이 민주, 자민련의 특검법 재의결 찬성 당론입장 확정으로 재의결 추진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는 가운데 야권이 요구해온 재신임 국민투표 철회가 이뤄질 경우 정국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지난 10월 10일 최도술(崔導術)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SK 비자금수수 의혹에 대해 "그의 행위를 제가 모른다 할 수가 없다"면서 "그동안 축적된 국민불신에 대해 재신임을 묻겠다"고 재신임 승부수를 띄웠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에서 즉각 `국민투표'라는 방법론까지 언급하고 나서면서 정국은 급류를 탔지만 여론조사 결과 재신임 지지에 대한 응답이 높게 나오면서 야당은 움찔해졌고, 정계와 법조계, 학계 등의 위헌논란도 계속됐다. 급기야 이만섭(李萬燮) 전 국회의장 등의 헌법소원에 대해 헌재가 지난 27일 국민투표 공고가 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각하 결정을 내리긴 했지만 헌재 재판관 9명중 4명이 위헌 의견을 내는 등 사실상 재신임 국민투표는 위헌이라는 취지의 판정을 내린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열린우리당의 김원기(金元基) 공동의장이 1일 노 대통령과 면담에서 "재신임 문제를 더 끌고 가서는 안된다"며 강하게 철회를 건의한 것도 헌재내부의 기류가 크게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특히 `정치적 여당'인 우리당에서 재신임 철회를 요구하고 있는 것은 교착상태의 정국을 우리당이 주도적으로 풀어가겠다는 속내와 함께,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국이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대결구도로 가는 것 보다는 `한나라당대 우리당'의 구도가 바람직하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청와대는 측근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가 끝난 뒤 정치권의 합의에 따라 재신임을 묻겠다는 노 대통령의 의지에는 아직 변함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윤태영(尹太瀛) 청와대 대변인은 "재신임 문제에 대한 기존 스탠스에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청와대 내에서도 재신임 국민투표는 사실상 어려운 것 아니냐는 분위기가 팽배한 것이 사실이다. 지난달 30일 한나라당 최병렬(崔秉烈) 대표가 문희상(文喜相) 청와대 비서실장의 예방을 받고 "헌재가 사실상 위헌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이는 만큼 재신임문제는 거둬들이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데 대해 문 실장이 "내가 보기에도 그런 측면이 있다"고 응수한 것도 청와대측의 이같은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여권내에서는 노 대통령의 재신임 관련 입장은 `정치권의 합의'를 대전제로 했던 만큼 열린우리당을 포함한 여야 4당이 재신임 철회에 합의할 경우 노 대통령이 이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우리당 김부겸(金富謙) 원내부대표가 "노 대통령은 김 의장이 각 당 대표들과 합의한다면 이를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미 조순형(趙舜衡) 민주당 대표가 4당 대표 회담을 제안해 놓은 상태이고 김원기 의장도 철회쪽에 찬성하는 편이어서 4당 대표가 만나면 이 문제의 실마리가 풀릴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여야가 합의로 재신임 철회를 요구하는 것은 노 대통령에 대한 또 다른 의미의 재신임이 아니겠느냐"며 "재신임 국민투표 철회는 사실상 시점이 언제냐는 문제만 남았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현재기자 kn020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