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내년 총선을 불과 5개월여 앞두고 각기다른 셈법으로 선거구제 개편안을 만지작 거리고 있다. 현행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꾸자는 것이 논의의 요체다. 이미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취임직후 정치권에 `지역구도 타파를 위한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제안한 바 있지만 당시는 원내 제1당인 한나라당이 눈길조차 주지않아 도입이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됐었다. 그러나 대선자금 정국이 장기화 되면서 정치권은 절체절명의 위기의식속에 새로운 총선 룰짜기에 돌입할 태세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중대선거구제를 당론으로 정한데 이어 자민련도 찬성입장을 밝히고 나섰으며 한나라당내에서도 수도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중대선거구제찬성론자들이 늘어가는 추세다. 특히 중앙선관위가 5일 고비용 정치구조와 정치부패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정당명부제나 정당투표에 의한 대선거구제를 제안해 논의는 더욱 가열될 전망이다. 중대선거구제 도입의 최대 명분은 `돈선거 방지'다. 지역이 세분화 돼있는 소선거구제에서는 유권자 개개인을 상대하기 때문에 돈을 안쓸 수가 없지만 지역이 광역화되면 돈을 뿌린다는 것이 큰 의미를 갖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다. 또한 소선거구제에서는 1,2위의 차이가 아무리 근소해도 1등만 금뱃지를 달수있고 2위 지지표는 `사표'가 된다는 점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속내는 따로 있다. 민주당이나 열린우리당의 경우, 수도권의 호남표심이분열돼 있는 상황에서 선거를 치르면 자칫 한나라당에 독상을 차려주는 형국이 될수도 있다는 판단이다. 민주당이 책임총리제와 중대선거구제를 연계시키는 것도 총선 이후 내치를 책임지는 연립정부의 일원으로 참여한다는 기치를 내걸어 수도권에서 한나라당과 우리당간 대결구도에 제동을 걸겠다는 총선전략의 일환이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유권자들의 여야 구도 심리를 조기에 무너뜨리지 않고는내년 수도권 총선을 기약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은 여권 프리미엄과 정치개혁의 명분을 내세워 영남과 호남, 충청.수도권 등 전 지역에서 1위는 몰라도 2위는 확보할 수 있는 판단에서 중대선거구제를적극 선호한다. 한 당직자는 "부산.경남 지역은 이미 상당부분 거점 확보가 유력한 상태고, 호남 민심도 최근 지방자치단체 보궐선거에서 나타났듯 우리당에 호의적이며, 행정수도 이전 공약으로 충청권에서도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중대선거구제의 키는 원내 1당인 한나라당이 쥐고 있다. 한나라당 영남권 의원들은 주로 현행 소선거구제로 가면 신4당체제에서 필승할 것이라는생각인 반면, 수도권 의원들은 최근 비자금 파문이후 한나라당의 수도권 지지율이급락하고 있는 현실에서 소선거구제로 승산이 있다는 것은 안이한 인식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5일 열린 박관용(朴寬用) 국회의장과 4당 총무.정책위의장 회동에서 중대선거구제론자인 홍사덕(洪思德) 총무는 침묵을 지킨 반면, 이강두(李康斗) 정책위의장이 "일본이 중대선거구제를 했을때 오히려 돈이 많이 들었다"며 반대의사를 분명히 한것도 한나라당 내부의 견해차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최병렬(崔秉烈) 대표는 물론, 이재오(李在五) 사무총장 등도 영남을 끌어안기위해 소선거구제 지지 의사를 잇따라 밝히고 있어 한나라당이 중대선거구제 선회를점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와함께 정치신인들은 "중대선거구제로 갈 경우 전국적 지명도가 있는 현역 중진의원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면서 "신진 정치인들의 진입을 봉쇄하는 또 다른기득권 지키기"라고 비판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현재기자 kn020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