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2일 기자간담회에서 검찰의 SK비자금 수사를 계기로 논란을 빚고 있는 대선자금 문제에 대해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며 정치개혁을 위한 `결연한 의지'를 피력하고 나섰다. 노 대통령은 우선 한나라당이 제출한 대선자금 특검법에 대해 "현재 검찰이 수사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특검법을 내놓는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고, 검찰수사 흔들기라는 결과가 될 가능성이 있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노 대통령은 "이번 수사를 통해 정치자금의 전모를 구조적으로 국민들이 이해하게 하고, 그것을 토대로 해 정치자금 제도의 근본적 개혁이 이뤄질 수 있도록 그런 방향으로 수사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언급은 한마디로 SK비자금 수사를 계기로 정치권의 대선자금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하게 된 만큼 차제에 대선자금 전면에 대해 수사를 하고, 그를 토대로 정치개혁 방안을 모색하자는 일종의 `창조적 파괴'로 활용하자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아울러 대선자금 문제를 둘러싼 공방과 논란으로 정.재계와 사회전반의 혼란을가중시킬 것이 아니라 정치권이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 구시대적 과오와 불행은 말끔히 정리하고 넘어가자는 `촉구성' 의미도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노 대통령이 한나라당의 특검 요구를 사실상 거부하면서 대선자금 수사에 대한 나름의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향후 검찰의 움직임이 주목되고 있다. 특히 "지구당과 사조직에 지급된 것만 밝히면 대선자금 규모가 나온다"며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하고 나서 검찰의 수사 방향과 함께 한나라당을 비롯한 정치권의대응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각에선 노 대통령의 이날 간담회가 현재 논란을 빚고있는 대선자금 문제에 대한 수습 보다 청와대와 한나라당-민주당간 공방을 부채질하는 결과를 낳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있으나 "노 대통령이 일단 국민여론을 선점할 명분을 확보했다"는게 청와대측 시각이다. 노 대통령은 그러나 이번 수사가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계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한 듯 "수사를 비자금 전반으로 확대하지 않고 정치자금에 한해 수사하는게 바람직하다"는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재계의 우려를 씻어 주려고 애를 썼다. "일반 정치자금이나 보험성 정치자금에 대해서는 이를 제공한 기업에 대해 사면하고 넘어가자고 제안할 용의가 있다"고 말한 것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 ◇ 대선자금과 검찰수사 방향 노 대통령의 이날 간담회 내용의 핵심은 "철저하고도 공정한 검찰 수사를 통해 각당의 정치자금 전모를 모두 밝혀내 정치자금 관련제도의 근본적 개혁이 이뤄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선자금 수사에 대해 정파적 이해로 접근해선 안되며, 한국정치의 후진 성을 상징하는 정치자금에 대해 `메스'를 가해 정치개혁과 제도개선의 시발점으로 삼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대내외에 과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노 대통령은 또 대선자금 수사방향과 관련, "지난해 각당이 사용한 대선자금의 구조적인 전모가 밝혀져야 한다"는 대원칙과 함께 수사 `각론'까지 제시했다. 일부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음에도 노 대통령이 직접 검찰 수사 원칙과 방향에 대해 강한 의지를 밝힌 것은 다소 이례적이다. 우선 노 대통령은 향후 수사는 정치자금 부분에 한정해야 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했다. 아울러 경제계와 사회전반에 `메가톤급' 파장을 몰고올 수 있는 무원칙적인 수사에 대해선 "원칙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도 정리했다. 특히 노 대통령은 지난 대선때 각당 후보가 결정된 후 투입된 정당자금과 선거 자금을 전부 공개할 것을 제안했다. 또 각당의 중앙당.지구당, 직능조직, 사조직 자금까지 모조리 공개해야 정치자 금의 전모가 밝혀질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면서, 각 정당과 기업의 (자금)장부에 대 한 조사 필요성도 언급했다. 다만 노 대통령은 수사 범위에 대해서는 "의미있는 범위까지 하는게 좋지만 현 재 대선자금이 불거졌으니까 대선자금 전모를 밝히는게 적절하다"고 말해, 총선자금 과 당내 경선자금으로 확대되는데 대해서는 다소 소극적 입장을 밝혔다 이와함께 노 대통령은 재계 수사에 대해서도 "일반 정치자금이나 보험성 정치자 금이면 그것을 제공한 기업에 대해 사면하고 넘어가자고 제안할 용의가 있다"고 말 했다. 이는 SK외 삼성, LG, 현대자동차, 롯데 등 나머지 5대기업의 정치자금 제공 부 분에 대해 일정하게 수사는 하되 기업총수를 줄줄이 소환하거나 구속하는 일은 바람 직하지 않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피력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선자금.측근비리 의혹 특검 노 대통령은 정치권이 정치자금에 대한 국민들의 의혹어린 시선을 털고 가기 위 해선 수단 보다는 정치자금 전모를 밝힐 수 있는 실질적 수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는 점을 강조했다. 따라서 특검 자체를 부인하기 보다 현재 검찰에 의해 일부나마 대선자금 수사가 진행중인 만큼 일단 이를 지켜본 뒤 미진하거나 왜곡.의혹이 있을 경우 특검을 도입 하는 것도 무방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제출한 3개 특검법안에 대해서는 사실상 반대의사를 표명했 다. "이번 기회에 정치자금 전모를 밝히고, 제도적.문화적 개혁의 계기로 삼아야 한 다"는 입장과 배치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노 대통령이 대선자금 문제와 맞물려 있는 `SK비자금 관련 특검법'과 `정대철. 이상수 의원 관련 특검법'에 대해 "전체 대선자금을 대상으로 해야지, 한쪽 대선자 금만 조사하자는 것은 납득이 안간다"고 밝힌 것은 한나라당이 법안 통과를 강행할 경우 거부권까지 행사할 수 있음을 시사한 셈이다. 아울러 `최도술.이광재.양길승 관련 특검법'에 대해서는 "국회에서 결의해 (법 안을) 보내주면 기꺼이 수용하겠다"고 밝히면서도 "수사 단서가 될 내용을 담아 보 내달라"며 사실상 거부의사를 내비쳤다. 즉, 측근 비리를 계기로 재신임 선언을 결단한 것처럼 주변 의혹에 대해선 철저 히 진상을 규명할 의지는 있으나, 무책임한 정치공세의 수단으로 활용될 여지는 남 기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회의 측근 관련 특검법안 처리 과정에서 노 대통령의 요구처럼 `합리 적인 수사 단서'가 법안에 포함될 경우 측근 비리의혹에 대한 특검 수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조복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