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李會昌) 전 한나라당 총재가 30일 SK비자금 100억원의 한나라당 유입에 대해 국민들에게 머리를 조아려 사과했다. ◇사과배경 = 이 전 총재의 대국민사과는 이미 어느 정도 예견돼 왔고 다만 어느 시점에 이뤄지느냐가 관심사였다. 이 전 총재가 검찰수사가 진행중인 시점에 사과한 것은 불법자금이 대선자금으로 사용된 것이 확인됨에 따라 더 이상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또 이번 사건과 관련, 한나라당 최병렬(崔秉烈) 대표가 두 차례 직.간접적으로 국민에게 사과했고, 대선당시 회계총책임자였던 김영일(金榮馹) 전 사무총장도 "모든 책임을 지겠다"며 사과했다. 이런 마당에 대선후보였던 이 전 총재로서는 계속 침묵하기엔 적잖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 전 총재는 이미 지난 20일 귀국회견에서 "문제가 있었더라면 책임지겠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이 전 총재는 SK비자금 100억원이 당에 유입돼 대선자금에 쓰였다는 사실이 확인된 지난 주말께부터 대국민사과 결심을 굳혔으나 검찰수사에 미칠 영향 등을 감안, 시기를 저울질해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총재의 한 측근은 "이 전 총재가 며칠 고심해 결단을 내린 뒤 회견문안을 직접 작성한 것으로 안다"면서 "다만 몇몇 측근들의 자문을 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총재가 검찰수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이 시점에 직접 대국민사과에 나선 것은 무엇보다도 이날 중 당시 실무자였던 이재현 전 재정국장의 구속여부가 결정되고 김 전 총장의 검찰소환이 임박한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 전 총재도 회견에서 "당을 위해 심부름한 죄밖에 없는 재정국장의 구속문제가 거론되는 상황을 보고 저는 참담한 심정을 견딜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권철현(權哲賢) 전 비서실장은 "검찰수사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 검찰수사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입장을 밝히려 했으나 자신 때문에 일어난 일이고 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해서 도와준 사람들이 너무 힘들어지는 것을 보고 오랫동안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도의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파장 = 한나라당은 SK비자금과 관련해 대선 후보였던 이 전총재가 당 차원에서 는 4번째로 직접 나서 사과함에 따라 대선자금에 대한 정치적 부담을 다소 덜 수 있게 되길 기대하고 있다. 당시 대선후보와 사무총장은 물론 현 당대표까지 과거 잘못된 관행에 대해 국민에게 진솔하게 사죄한 데다가 특검을 통해 철저한 진상규명을 약속했다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전 총재가 회견에서 SK비자금의 당 유입 및 대선자금 사용을 알았는 지에 대해선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 무엇을 언제 얼마나 알았으냐는 중요하지 않다"며 속시원히 밝히지 않음에 따라 의혹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특히 한나라당의 SK비자금 유입문제에다가 민주당과 열린우리당간에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대선자금 의혹을 둘러싼 공방이 계속 되고 있어 정치권은 대선자금 소용돌이 속에서 쉽게 헤어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패자인 이 전 총재가 불법대선자금 사용에 대해 먼저 사과했기 때문에 이젠 노 대통령의 대선자금 의혹 규명에 대한 정치권과 여론의 압박이 예상된다.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에게 대선자금 특검 수용을 강도높게 요구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이번 회견이 검찰수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도 주목된다. 검찰은 이 전 재정국장에 이어 조만간 김 전 총장 등 당 관계자를 소환할 계획이다. 특히 검찰이 `원칙수사'입장을 밝히고 있고, 이 전 총재 또한 `모든 책임'에는 당연히 법적 책임도 포함되며 검찰이 소환요청을 할 경우 피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이 전 총재에 대한 검찰 수사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병수 기자 bings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