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黃長燁) 전 북한 노동당비서가 27일 오전미국 방문길에 오르기까지는 숱한 우여곡절이 있었다. 황씨의 미국행 결심은 지난 2001년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미국내 보수 단체들의 입장이 강화되고 특히북한의 정권 교체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진 것이 남북정상회담 이후 김정일 정권과의 대화와 남북간 화해 기류에 불만을 가진 황 전비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국민의 정부'는 황씨가 미국 고위관료 면담이나 민간단체 연설 등을 통해 가뜩이나 보수적인 부시 행정부에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그의 방미를 견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표면적인 방미허가 유보 이유는 그의 신변안전에 대한 충분한 검토와 준비기간이 필요하다는 것. 정부는 방미 허가를 유보하면서 계속 황씨를 설득했으며 급기야 황씨는 그해 말"(북한의 핵.화학무기를) 논증하기 위해서라면 내가 미국에 갈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며 방미의 꿈을 접었다. 이 과정에서 지난 1997년 '형님'과 '아우'로 함께 사선을 넘어 한국행을 선택한김덕홍(金德弘)전 여광무역 사장과의 관계가 틀어지기도 했다. 당시 김씨는 "황씨가국정원의 회유로 마음을 바꾸고 개인연구소 건물 신축을 놓고 정부와 협의중"이라며비난하기도 했다. 그후 황씨의 방미 희망은 노무현(盧武鉉) 정부의 등장과 함께 다시 불을 지폈고디펜스포럼을 축으로 한 미국내 보수단체들이 호흡을 맞췄다. '국민의 정부'는 자칫 남북관계 진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황씨의 방미를 사실상 견제한 반면 참여 정부는 황씨 개인의 인권보호 차원에서 방미를 허용해야 한다는 원칙 아래서도 그의 신변보호 문제, 대북 관계 등 때문에 고민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 때문에 황씨의 미국행을 적극적으로 저지할 수는 없고 황씨 스스로포기해주기를 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황씨가 지난 2월 미국 디펜스포럼으로부터 방미요청을 받은 이후 정부와의 신경전이 수개월째 계속됐다. 황씨는 지난 3월과 6월 노원구청에 여권발급을 신청했으나국가정보원 심사과정에서 보류 처분을 받았다. 국정원은 황씨와의 불편한 관계가 지속되던 지난 7월18일 보도자료를 내고 "황씨에 대한 특별보호기간(6년)이 만료돼 황씨를 사회에 배출키로 했으며 향후 미국정부와의 협의를 거쳐 황씨에 대한 신변보호가 이뤄질 경우 미국 방문을 허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정원의 발표 이후 황씨는 8월5일 세번째로 여권을 신청한 끝에 9월 중순 단수여권을 발급받았다. 당시 황씨는 "이번에도 여권 발급이 안되면 다시 여권 신청을하지 않고 인권침해를 이유로 법정소송에 나설 것" 이라며 비장한 각오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방미에 따른 황씨의 신변 보호 문제는 정부의 계속적인 관심사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8월 중순 황씨 주변에서는 "미국정부가 지난 6월18일 주미대사관을 통해황씨에 대한 신변보장각서를 전달해왔으나, 한국 정부는 한미간 실무 접촉을 갖고경호 문제를 충분히 논의해야만 방미를 허용하겠다며 말을 바꾸는 등 결국 미국에보내지 않겠다는 것 아니냐"는 등의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황씨는 당초 9월 말 방미를 희망, 9월초 미 대사관에 비자를 신청했으나 정작비자 발급은 방미를 나흘 앞둔 지난 23일에야 이뤄졌다. (서울=연합뉴스) 장용훈기자 jy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