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대남정책을 사실상 총괄해온 김용순 노동당 대남담당비서가 27일 사망함에 따라 남북관계의 향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고 김용순 비서가 '당적지도'가 최우선시되는 북한에서 노동당 대남담당비서겸통일전선부 부장 직함 외에도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등 남북교류협력의 실무채널까지 장악해왔던 점을 감안할 때 그의 사망으로 인한 업무공백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그는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의 막후 주역으로, 북한의 대남정책에 있어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이어 사실상 제2인자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그가 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대통령-김정일 국방위원장간의 환담 자리에 북한 간부로 유일하게 배석했으며 이후 김위원장의 남측 주요인사 접견에 빠짐없이 참석해온 점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당국차원의 남북교류협력을 총괄하는 남북장관급회담의 북측 단장인 김령성 내각 책임 참사의 직계 지휘라인이기도 했으며, 민간차원의 대북사업 주도자인 고 정주영 현대회장의 실질적인 카운터 파트이기도 했다. 따라서 그가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철도.도로연결 등 3대 현안사업은 물론 사회.문화.체육.문화 분야의 남북교류에 관한 북한측 입장을 결정하는데 큰 역할을 해왔다는 게 정부 안팎의 판단이다. 고 김용순 비서는 특히 2000년 9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자격으로 서울과 제주도를 방문해 남북 화해와 협력이라는 시대적 상황 변화에 맞는 새로운 대남정책을 구상하고, 이후에도 그 기조를 유지해왔다. 그는 사망 직전인 지난 6월13일 남북공동선언 3돌을 맞아 노동신문에 기고한 글을 통해 "북과 남은 6.15 공동선언의 기본정신에 맞게 우리 민족끼리 공조해야 한다"며 '민족공조'를 강조하기도 했다. 한 북한 전문가는 "대남정책과 관련, 김용순 비서가 사실상 전권을 행사해왔다는 점에서 북한 지도부내에서 당분간 혼선이 빚어질 가능성이 있다"면서 "차후 어떤 인물이 노동당 대남담당비서가 되느냐에 따라 남북관계 변화 여부가 감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측은 이미 남북관계가 제도화된 만큼 김용순 비서의 사망으로 인한 혼선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그가 대남정책의 총책이라고 하더라도 (그간 장관급회담만도 12차례가 열릴 정도로) 남북관계가 공고해진 점과 교통사고로 인해 그의 사망이 충분히 예견돼 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의 사망이 남북관계 진전의 걸림돌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북한이 그간 남북관계에 무게를 둬 온 점으로 미뤄 김용순 비서 후임으로 남북관계에 적극적인 인물을 내세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정부 관계자도 "김용순 비서가 대남정책의 모든 것을 기안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결심을 받아왔다는 점에서 후임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대남 정책에 약간의 변화가 예상되나 큰 틀에서 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kji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