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과 4당 대표 연쇄회동이 '형식적인 만남'으로 끝났다. 정국현안에 대한 분명한 가닥을 잡지못한 채 각자의 입장을 개진하는 데 그친 것이다. 그만큼 향후 정국의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의미다. 특히 최대 쟁점인 대선자금과 재신임투표문제에 대해 뚜렷한 정치적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함에 따라 이를 둘러싼 대립과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연쇄회동과 노 대통령 구상=노 대통령은 일단 4자회동에서 잃은 것보다는 얻은 게 많았다는 분석이다. 우선 재신임 국민투표문제에 대해 민주당과 자민련에서 철회를 요구하고 나섬에 따라 재신임이 예정대로 실시되지 않더라도 적어도 '노 대통령 책임론'에서는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재신임 투표 향배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덜었다는 얘기다. 실제 국민투표안은 정치적 합의도출 실패라는 명목으로 철회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상황이다. 비자금 수사와 관련해서도 '철저한 수사' 라는 원칙적인 공감대가 이뤄짐에 따라 야당의 파상공세는 일단 피할 수 있게 됐다. SK비자금 1백억원 수수사건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자민련이 다른 입장이라는 것이 공식 확인됐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이를 토대로 당분간 내각개편을 보류한 채 정치개혁 드라이브를 거는 데 진력할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이 정치개혁방향을 언급한 데서도 이같은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노 대통령이 26일 "정치자금과 대선자금에 대한 제도개혁을 하자"며 '1인당 기부액은 1천만원으로 줄이되 총액한도는 늘리고 사용처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는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했다. 이를 대선과 총선은 물론 지방선거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국전망=향후 정국은 청와대와 통합신당이 한나라당과 대결하는 가운데 민주당과 자민련이 양측에 각을 세우는 이른바 '3각 대립구도'가 상당 기간 유지될 전망이다. 당장 대선자금 수사를 놓고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격돌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청와대와 한나라당 일각에서 거론돼온 '선(先)고백 후(後)사면론'이 이번 연쇄회동을 통해 사실상 물건너갔고,한나라당이 정면 돌파쪽으로 가닥을 잡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일각의 특검제 도입 등이 새로운 이슈로 부상할 개연성도 다분하다. 아울러 노 대통령이 4당 대표의 조기 국정쇄신 단행에 난색을 표함에 따라 이를 놓고 정치권과의 힘겨루기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창 기자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