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평양에서 막을 내린 제12차 평양 남북장관급회담은 당초 기대와는 달리 최대 현안인 북핵 문제에 대한 서로의 입장 차이만 확인함으로써 핵 문제의 전도가 예사롭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남북장관급 회담이 물론 핵 관련 현안을 논의하는 핵심적인 논의의 장은 아니지만, 지난 해 10월 북핵 위기의 재발이후 지금까지 모두 5차례에 걸친 회담에서 핵 관련 문구가 공동보도문에 포함되지 못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이번 회담에서 보여준 태도를 보면 북한이 앞으로도 핵 관련 강경발언의 수위를계속 높여 나가면서 미국을 비롯한 6자회담 당사국들에게 압박을 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그 결과 2차 6자회담 개최까지는 불가피하게 험로를 거쳐야 할 전망이다. 하지만 남북이 경제협력추진위원회 제7차 회의와 제13차 장관급회담 일정에 합의, 남북대화의 모멘텀은 계속 이어 나가기로 한 것은 긍정적인 대목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이번 회담이 쉽지 않을 것임은 사전해 충분히 예상됐다. 북한은 지난 2일 외무성대변인 담화에서 `재처리된 플루토늄의 용도변경'을 시작으로 ▲미국의 서면안전담보는 `빈 종잇장' ▲6자회담을 포함한 모든 핵 관련 협상에서 일본 배제 등을 주장하며 발언의 수위를 계속 높여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장관급회담이 진행중인데도 불구, 예의를 벗어나면서까지 16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핵억제력의 물리적 공개조치'를 거론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이렇게 볼 때 북한은 이번 장관급회담에 임하면서 남측으로부터 예상되는 2차 6자회담 수용 등 핵 관련 공세를 최대한 피하려고 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기본발언 등을 통해 북한이 남측 일부 반북단체의 해체 및 비전향 장기수 송환등 남측이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들을 들고 나온 것도 그 밑에는 남측의 핵 관련 공세를 상쇄시키기 위한 `맞불'의 성격이 짙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남측 회담 관계자는 "북측은 비전향 장기수 송환과 반북단체 해체 요구를 끝까지 굽히지 않았다"며 "이로 볼 때 북측이 처음부터 회담의 성사를 바라지 않았으며그런 요구들은 핵 관련 요구를 상쇄하기 위한 카드였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미국이 북한에 대한 과감한 정책전환 의지를 보여주지 않는 상황에서유일하게 갖고 있는 `2차 6자회담 수용'이라는 카드를 북한으로서는 이번 회담에서드러낼 수 없다는 점이 핵 관련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한 속사정인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지난 7월 9∼12일 서울에서 열린 제11차 회담에서는 "핵 문제를 적절한 대화의 방법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한다"는 표현을 이끌어 냈으며그로부터 20일후에 북한이 확대 다자회담을 전격적으로 수용한 바 있다. 이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남북회담 유용론'이 크게 빛이 바랬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지만 남북의 고위급 인사들이 마주앉아 서로 진지하게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상대방의 주장을 경청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유용하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다만 핵 문제를 포함한 핵심 쟁점에 대한 접점찾기에 실패함으로써 제9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연내 실시와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 규모 협의, 사회문화협력 분과회의 구성 등 실제적인 현안들이 당분간 표류하게 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이 밖에 종전과는 달리 북측이 맞불카드 성격의 `억지주장'을 들고 나오는데도불구, 어떻게 해서든 합의를 도출한다는 `모양새 갖추기식 회담'은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남측 대표단이 단호함을 과시한 점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서울=연합뉴스) 이 유 기자 ly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