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정가에 또다시 사정 한파가 불어닥칠 조짐이다. 야권의 한 중진 정치인은 16일 "검찰 수사가 심상치 않다. 당분간 말을 아껴야할 것 같다"며 성급히 전화를 끊었다. 검찰이 내주부터 SK 비자금을 받은 정치인 2-3명에 대한 소환 조사에 착수할 것임을 밝힌 뒤였다. 특히 안대희(安大熙) 대검 중수부장이 "(불법적인) 정치자금을 선거에 썼다. 이건 그나마 좋다 이겁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그게 아니라 축재다. 선거때 한 몫 챙겨 외국에 빌딩도 사고 자식들에게도 물려주고 그러는데 이건 축재가 아니냐"며 정치권의 부정부패를 언급한 부분에 정치권은 주목하고 있다. 단순 정치자금 수사가 아니라 정치권의 부패, 즉 도덕성 문제를 건드리겠다는 안 부장의 이같은 언급은 향후 검찰의 정치자금 수사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도 보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검찰의 정치권 사정은 수뢰 입증을 명백히 하기 어려울 경우 정치자금으로 인정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부터는 사용처가 정치적 용도가 아닌 개인적 치부로 드러났을 경우 이를 단순 정치자금으로 인정하지만은 않을 것임을 강력히 경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검찰이 정치자금법 공소시효(3년)가 지난 16대 총선을 전후한 시점의 금품 수수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 이를 반증하는 대목이다. 검찰 주변에서는 SK 그룹으로부터 각각 10억원대 안팎의 비자금을 받은 여야 거물급 정치인 3-4명에 대해 검찰이 혐의사실을 입증할 증거를 상당부분 확보했다는소문도 나돌고 있다. 이같은 검찰 수사 확대에 대해 야권 일각에서는 `정치권 물갈이'를 염두에 둔기획 사정이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지난 13일 시정연설에서 정치자금의 투명화를 강조한데 이어 16일 세계지식포럼 연설에서 "재신임을 통해 정치인에게 적용되는 도덕적기준이 엄격해지기를 원하고 있으며, 아울러 많은 정치인들도 도덕적 기준을 올려주길 원하고 있다"고 말한 것은 재신임을 배수진으로 정치개혁에 강한 드라이브를걸겠다는 속내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한 민주당 의원은 "불안한 생각이 든다. 일련의 사태들이 그냥 느닷없이 나오는것이 아니라 계획된 것 같다"고 말했다. 더욱이 한나라당 내에서는 최돈웅(崔燉雄) 의원의 100억원 수수 및 일부 개인적유용혐의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최 의원뿐 아니라 상당수 의원들이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속에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흔들기'가 본격화된 게 아니냐는 시각도 없지 않다. 한나라당 박 진(朴 振) 대변인이 "총선자금 수사까지 확대된다면 핵심적 중요성을 갖는 최도술씨 사건이 희석될 우려가 있다"고 말하고, 민주당 장전형(張全亨) 부대변인이 "마치 김밥말이 하듯 여.야당을 적당히 섞어 구색맞추기용 수사를 한다는오해를 받아서는 안될 것"이라고 떨떠름한 반응을 보인 것도 이같은 기류를 반영한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검찰의 정치권 사정 확대가 정치권 내부의 자정과 개혁을 압박해 새로운정치문화를 앞당기는 동인(動因) 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상당하다. 이미 각당은 정치자금의 투명화를 위해 중앙선관위가 제시한 100만원 초과 기부및 50만원 초과지출시 수표.신용카드 사용과 계좌입금 의무화, 100만원 초과 또는연간 500만원 이상 정치자금 기부자 명단 공개 등에 긍정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지난 14일 한나라당 최병렬(崔秉烈) 대표와 16일 통합신당 김근태(金槿泰) 대표등이 후원회 제도 전면 개선, 정치자금 특별법 제정 등에 목소리를 높인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자신들의 `돈줄'과 관계된 정치관계법 개정에는 유독 굼뜬 행보를 보이거나 `유리한 쪽으로의 법 제정'에 익숙해 왔던 정치권이 이처럼 내부 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은 시민단체 및 여론의 압박도 작용했겠지만 최근 일련의 검찰 수사와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서울=연합뉴스) 김현재 기자 kn020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