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6개월 앞으로] 재신임과 총선
내년 4월15일 실시되는 17대 총선은 역대 총선에서 볼 수 없었던 `재신임 정국'으로 막을 올림으로써 재신임 정국의 향배가 총선 결과를 크게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지난 10일 "재신임을 묻겠다"고 천명한 이후 한나라당과 민주당, 통합신당, 자민련 등 주요 정당은 모두 내년 총선에 미칠 유불리 영향을염두에 두고 재신임 정국 대응책을 모색하며 빠르게 총선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
노 대통령의 제안대로 12월15일 재신임 국민투표가 실시될지는 현재 불투명하지만, 재신임 투표 실시 여부와, 실시될 경우 재신임 여부, 그 각각의 경우에 따른 후속 파장 등이 총선 구도와 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특히 재신임 투표를 둘러싸고 형성되고 있는 노 대통령-통합신당과 한나라당-민주당간 대립전선은 총선에서 예상되는 대립축의 하나인 `친노(親盧) 대 반노(反盧)'구도의 예고편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정신적 여당'을 자처하는 통합신당은 재신임 정국 조성 이후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대해 기선을 잡았다고 보고, 이를 통합신당 창당과 세확산의 동력원으로 삼아 당초 12월7일로 예정했던 중앙당 창당일정을 내달 9일로 한달 앞당기는등 창당 행보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 및 자민련이 재신임 공조로 압박하는 것을 `개혁 대 반(反)개혁' 구도 형성과 대선 때 노무현 지지층의 재결집 계기로 역이용하는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반면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의 재신임 속보가 최도술(崔導術)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SK비자금 수수의혹 사건으로 처한 곤경을 탈출하는 동시에 내년 총선을 겨냥해 통합신당에 힘을 실어주고 자신들을 `반개혁'으로 몰아붙이기 위한 의도라고 보고, 이의 무력화에 우선 대응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재신임 국민투표 수용 여부에 대해선 명확한 입장 표명을 유보하고, `선(先) 최도술 비리 규명'을 내세워 국회 국정조사, 특검, 탄핵 등을 거론하며 역공하고 나선것이 그것이다.
민주당도 위헌론을 앞세워 재신임 국민투표의 즉각 철회를 요구하는 한편 지지기반인 호남지역의 반(反)한나라당 정서를 무릅쓰고 한나라당과 공조를 통해 재신임정국에 응급 대응하고 있다.
이는 재신임 정국이 한나라당과 통합신당의 양자구도로 형성되는 것을 막고, 특히 재신임 투표 결과 재신임으로 결론날 경우 민주당 지지층의 통합신당으로 이탈가능성을 예방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자민련은 `선 진상규명'에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동의하면서도 두 당과 달리재신임 투표를 적극 수용하고 나섬으로써 그 의도를 놓고 분분한 추측을 낳고 있다.
각당의 이같은 양상은 각종 여론조사 결과 노 대통령에 대한 재신임 비율이 지지도와 달리 호남을 비롯한 전국에서 불신임 비율보다 높게 나온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앞으로 재신임 국민투표와 관련된 시나리오는 최도술 전 비서관에 대한검찰 수사 결과를 비롯해 변수가 워낙 많아 예측하기 힘든 실정이다.
일단 재신임 투표가 실시돼 재신임 결과가 나올 경우 내각과 청와대 전면 개편을 비롯한 국정쇄신 드라이브와 현 내각 각료 다수의 총선 투입, 통합신당의 정치개혁 화두 선점 등으로 총선에서 통합신당에 유리한 국면이 조성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예상이다.
그러나 유권자들이 재신임 투표를 일종의 대선으로 간주할 경우 총선에선 노 대통령에 대한 견제심리가 발동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때문에 통합신당에 유리한국면으로만 전개될 것이라고 속단하기 어렵다.
재신임 투표 결과 불신임으로 결론날 경우는 총선 정국이 대선 정국으로 급변하면서 개헌론이 급속 확산되는 등 예측불허의 정국이 전개될 수밖에 없다.
또 재신임 국민투표가 끝내 무산되는 상황도 ▲야권이 재신임 투표 대신 노 대통령에 대해 탄핵 공세를 펴고 나서는 경우와 ▲반대로 야권이 국민투표없이 사실상`재신임'을 인정하고 정치권 전체의 합의를 통한 정치개혁 논의로 정국이 바뀌는 경우를 상정할 수 있기때문에 총선 정국은 당분간 짙은 안개에서 벗어나기 힘들 전망이다.
(서울=연합뉴스) 문병훈기자 bhm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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